— 자녀가 느끼는 가정 내 소속감에 대하여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전에 먼저 눈빛을 배운다. 세상을 향한 첫 번째 질문은 언제나 소리 없는 것이다. 질문은 이렇다.
“나는 여기에 있어도 될까?”
물음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대답해 주는 공간이 있다. 가정이다.
심리학자 존 볼비는 “안전한 애착 관계를 맺은 아이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엄마가 웃을 때 세상도 웃고 아빠가 다정할 때 세상도 다정하다.
아이의 마음속에 ‘나는 이 집에서 환영받는다’는 감각이 자리 잡을 때 그는 탐험가가 된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오르며 용기를 내고 낯선 친구에게 말을 걸며 세상을 향한 문을 연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내 자리가 없는 곳’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 존재를 늘 검열한다. 불안정 애착의 아이들은 실패보다 ‘거절’을 더 두려워한다. 그건 심리적 불안이 아닌 존재의 뿌리를 흔드는 깊은 흔들림이다.
아이에게 감정은 언어보다 먼저 온다. ‘엄마가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줬다’는 경험은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보다 오래 남는다.
아동발달학자 다이애나 보움린드는 양육 태도를 세 가지로 나눈다. 그중 ‘민감하게 반응하며 명확한 경계를 제시하는 부모’가 아이의 자기 주도성과 소속감을 동시에 키운다고 했다.
즉, 아이에게 자유만 주는 것보다 ‘네가 여기 있는 걸 나는 기쁘게 생각해’라는 메시지를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요리를 하고 밤마다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선택한 옷을 존중해 주는 사소한 순간들이 ‘이 집에서 나는 환영받고 있다’는 감각으로 축적된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말했다.
“가정은 사회화의 첫 번째 장이다.”
가정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회라는 바다를 항해하기 위한 첫 조종실이다. 가정에서 따뜻한 소속감을 경험한 아이는 친구의 다름을 이해하고 다툼 후 화해하는 방법을 배우며 나중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가정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잦은 아이는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도 자기 자리를 불안해한다. 집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감각은 그를 방어적으로 만들고 때론 공격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인문학은 소속감을 존재의 이유와 연결 지어 해석한다.
철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의미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어쩌면 아이에게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너는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존재야.”
아이가 소속감을 느낀다는 건 그의 존재가 ‘있는 것’을 넘어서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엄마가 널 기다렸어.’
‘네 생각, 궁금했어.’
‘네가 없으니 집이 조용하더라.’
짧은 말들이 아이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존감이 되고 자존감이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
흥미롭게도, 소속감은 뇌의 구조와도 연결되어 있다.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때 그들의 뇌에선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공감 능력과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주며 면역력과 집중력도 높여준다.
하버드대 아동발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가정에서 정서적 안정과 소속감을 느낀 아이들은 문제 해결력과 창의성, 학습 능력이 높다. 반대로 정서적 결핍을 경험한 아이들은
감정 조절이 어렵고 대인 관계에서 지속적인 불안을 경험한다.
이처럼 ‘가정에서의 따뜻한 소속감’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뇌와 몸을 키우는 과학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말보다 먼저 눈빛, 손짓, 표정을 읽는다. 말로 “사랑해”라고 해도 엄마의 얼굴이 지쳐 있다면 아이의 뇌는 사랑보다 외면을 기억한다.
그래서 진심은 말보다는 태도로 전해져야 한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이불을 덮어주며 “잘 자”라고 말하는
그 반복되는 순간들이
아이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오늘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눈을 마주쳤을 때
“내가 여기 있어도 괜찮아”라고 느꼈을까?
질문의 대답이 아이의 전 생애를 구성하는 기초가 된다.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믿는 아이는 상처를 받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외로운 순간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속감은 말로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나는 여기에 있어도 돼”
가정이라는 첫 번째 세계에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단 한 줄의 확신. 확신이 아이의 심장에 따뜻하게 새겨질 때
그는 세상 어디서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