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14
한순간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다. 자동차 사고, 전쟁, 폭력, 재난 혹은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 어떤 사건은 그날을 기준으로 삶을 둘로 나눈다. 그 전과 그 후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 말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이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가 남긴 상흔이다.
PTSD는 몸과 감정, 인식 전체에 각인된 충격의 흔적이다.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면 뇌는 생존을 위해 정보를 정리하지 못한 채 감정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불이 꺼지지 않는 경보장치처럼 사건이 끝났음에도 위협은 계속되는 듯하다. 안전한 공간에서도 갑자기 심장이 뛰고 작은 소리에 놀라며 그날의 장면이 꿈속처럼 되살아난다.
어떤 이들은 그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삶 전체를 축소시킨다. 사람을 피하고 장소를 피하고 대화를 피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때론 감정 자체를 느끼지 않기 위해 냉담해지고 자신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많은 PTSD 환자들이 겪는 고통 중 하나는 스스로를 향한 비난이다. “이 일쯤은 이겨내야지”, “왜 나는 아직도 이러는 걸까”,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나는 왜…” 자책은 고통을 더 깊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PTSD는 뇌의 생리적 구조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정식 질환이다. 해마(기억), 편도체(공포), 전전두엽(이성적 판단)의 기능 변화가 일어나며 트라우마에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구조화된다.
그러므로 PTSD는 약하거나 나약한 이들이 겪는 일이 아니다. 누구든 충분히 강한 충격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다. 오히려 그 사건 속에서 끝까지 버텼기 때문에 마음이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매일 밤 악몽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때론 아침의 빛조차 무섭고 소리 하나에도 온몸이 얼어붙는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기억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 PTSD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함께 나타나며 때론 알코올 의존이나 자해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와 공감이다. “왜 그래?”가 아니라, “그럴 수 있어”라는 말. 그들은 위로가 아니라 공감받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울지 않아도 괜찮고, 그냥 함께 있어줄 수 있는 누군가. 존재만으로도 회복은 시작된다.
많은 이들이 PTSD를 '잊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만 치유는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다시 '살 수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심리치료 중 하나인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EMDR)'처럼 뇌는 천천히 파편화된 기억을 재배열하며 감정과 생각을 조율할 수 있다.
치유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재건축이다. 무너졌던 자리 위에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쌓아가는 일. 그 사건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품고도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PTSD는 하나의 병명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의 이름이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 학대받은 아이,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당신과 나의 주변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려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기억된 상처가 삶을 뒤흔드는 재난으로 남지 않기 위해선 우리가 서로의 고통에 이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지 않지만 공감받을 때 생기는 힘은 배가 된다.
기억의 잔해 위에 꽃은 다시 피어난다.
아무리 무너진 땅이라도 그 위에 따뜻한 눈빛 하나, 다정한 말 한 줄, 조용한 기다림 하나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틔울 수 있다. PTSD를 안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꽃이 피어날 수 있도록 함께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지금 기억의 밤을 건너고 있다.
언젠가 길 끝에서 새로운 아침이 올 것이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