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15
– 나를 잃어가며 웃는 이들에게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산다. 그래서 누군가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내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데 겉으로는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우리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이름 없는 감옥 속에 갇혀간다.
이 콤플렉스는 겉보기에는 따뜻함의 탈을 쓴다. 배려심, 이해심, 책임감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희생시키는 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인간은 본래 ‘자기실현’이라는 성장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이 욕구를 차단한다. 자신의 감정, 욕구, 한계조차 무시한 채 타인의 기대에만 응답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부모나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해.” 이 말은 따뜻한 훈육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조건부 사랑의 메시지일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해선 '말을 잘 들어야 하고', '거절하면 안 된다'는 식의 내면화된 신념이 심어지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도날드 위니컷은 '진짜 자아(True Self)'와 '가짜 자아(False Self)'를 구분했다. 진짜 자아는 본연의 감정과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자아이고 가짜 자아는 타인의 기대에 맞춰 조작된 자아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이들은 대부분 ‘가짜 자아’를 강화시킨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고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내 마음과는 다른 얼굴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커뮤니케이션학자 폴 왓츠라위크는 “우리는 의사소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침묵마저도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이 "괜찮아", "네가 좋다면 나도 좋아"라고 반복하는 이유는 평화를 원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침묵과 양보는 오히려 관계의 왜곡을 낳는다.
'표면적 조화'는 갈등을 잠재우는 듯 보이지만 결국 쌓인 감정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다. 진심 없는 수긍은 상대에게 왜곡된 신호를 준다. 그렇게 관계는 점점 일방향으로 기울고 나중엔 "왜 이제 와서 말하느냐"는 오해만 남는다. 진정한 소통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착함’이 아니라 ‘진심’이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의 안정성과 통합을 위해 일정한 역할과 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착한 사람은 체계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톱니바퀴다. 반항하지 않고 규칙을 따르며, 이익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한다. 조직과 집단은 이런 이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불만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착한 사람들이 감정노동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고통을 '성실'이나 '덕목'으로 포장하고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는 압박을 정당화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유교적 가치관과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착한 사람을 더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떠받든다. 결국 사회는 그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고 개인은 점점 소모되어 간다.
인문학은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좋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다움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이 세 가지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나는 생각하지만 말하지 않고 행동하고 싶지만 멈춘다.
‘착함’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기 존재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정한 착함은 타인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신도 존중할 수 있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타인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잃고 있는가?”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타인의 감정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뇌의 ‘거울 뉴런’ 시스템과 관련 있다. 이 시스템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공감 능력은 인간의 사회적 진화에 있어 중요한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공감은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유발한다. 특히 공감 능력이 높고 감정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자주 죄책감을 느끼고 타인의 불편에 쉽게 흔들린다.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강화시킬 수 있다. 결국 착함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 경향과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복합적 결과인 셈이다.
착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자신을 해치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멈추어야 한다. 타인을 돕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구하는 일’이다.
거절은 나쁜 일이 아니다. 침묵 대신 내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일은 용기이며, 진정한 성숙이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짜 인정은 ‘참아낸 나’가 아닌 ‘진짜 나’를 드러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제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진심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로 하자. 때로는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라면 그 길을 택해도 괜찮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니까
진짜 좋은 사람은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을 아끼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