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번트 증후군, 결핍 속에 피어난 천재성

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152

by 은파랑




서번트 증후군, 결핍 속에 피어난 천재성


우리는 ‘천재’를 완벽함과 동일시한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고 결함이 없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세상엔 그런 틀을 가볍게 뒤집는 존재들이 있다. 겉으론 어눌하고 느리고 때론 세상과 단절된 듯 보이지만 하나의 영역에서만큼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빛을 내는 이들.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깜깜한 방 안에서 한 점 찬란히 빛나는 별처럼 존재한다. 주변은 이해되지 않지만 별빛만큼은 누구보다도 뚜렷하게 세상을 비춘다.


서번트 증후군은 일반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언어 표현이 어눌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이 서툴며 때론 일상생활조차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이들에게서 음악, 미술, 암산, 달력 계산, 공간 감각, 언어 능력 등 특정 영역에서 놀라운 재능이 발견된다.


이 현상은 ‘재능’ 이상의 것이다. 예컨대 한 사람은 피아노를 한 번 듣고도 정확하게 연주하며 다른 한 사람은 수십 자리의 소수를 외워 순식간에 나열한다. 누군가는 헬리콥터 한 번을 보고 수천 개의 나사를 포함한 구조를 손으로 그려내고 어떤 이는 하루에 하나씩 외국어를 익히기도 한다. 뇌의 한쪽 문이 닫힌 대신 다른 문 하나가 활짝 열려버린 듯한 기적이다.


서번트 증후군의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그들의 천재성이 결핍 뒤에 가려진다는 점이다. 사회는 ‘정상’이라는 이름의 틀을 기준 삼아 사람을 평가한다. 말이 서툴면 ‘미숙’하다고 하고 감정을 읽지 못하면 ‘이상’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 기준은 서번트의 세계를 이해하기엔 너무 좁고 일방적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일반인과 다르다. 언어보다는 시각, 청각, 패턴, 수학적 직관 같은 비선형적 사고가 발달되어 있고 이는 오히려 현대 과학이나 예술의 최전선에서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교육의 변두리로 인간관계의 그림자로 밀어낸다. 천재는 있으나 천재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없다.


많은 서번트는 자기 재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어릴 적엔 ‘기이함’으로 치부되고 성인이 되어도 능력이 꽃피울 기회조차 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이들 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천천히 걸어가며 재능의 조각을 하나씩 발견해 주는 이가 있다면 기적은 일어난다.


한 아이가 정리되지 않은 숫자를 바라보며 자신만의 논리로 배열을 하기 시작할 때 어른들이 “지우개로 지워야 할 낙서”라고 여긴 숫자들은 사실 패턴과 질서를 찾아가는 수학적 천재성의 발현일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비정상'이라는 잣대로 재단하지만 잣대를 내려놓는 순간 다른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열린다.


서번트 증후군은 뇌 과학에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수수께끼다. 일부 연구는 좌뇌 손상 이후 우뇌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특정 능력이 발현된다고 보고하고 일부는 유전적 소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명확한 건 단 하나다. 뇌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잠재력으로 가득하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잠재력 안에서 무수한 형태로 피어난다.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언어로 누군가는 세상과의 침묵 속에서 하나의 재능으로. 다름이 차별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서번트 증후군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들은 극적인 인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 속에도 분명 존재한다. 학교의 교실 끝, 말을 아끼는 학생. 복지관의 조용한 방에서 숫자를 쓰고 있는 남자. 거리를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소녀


그들은 자신만의 속도와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는 존재들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런 재능의 파편을 갖고 태어났고 누군가는 그것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어둠 속에서도 별은 빛난다.

서번트 증후군은 어둠 속에 숨겨진 별 하나다.

빛을 알아보는 건 사회의 몫이며 모두의 책임이다.

누군가의 느리고 어색한 걸음 너머에서 우리는 가끔 기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기적은 삶을 조금 더 넓고 깊게 만든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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