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제왕: 나르시시즘이라는 고독한 사랑

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151

by 은파랑




거울 속의 제왕: 나르시시즘이라는 고독한 사랑


어린 시절 우리는 누구나 거울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본다. 동그란 눈, 희미한 웃음, 손끝으로 턱선을 따라가며 “이게 나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그 순간의 눈빛은 호기심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첫 만남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삶이 무게를 더할수록 어떤 이들은 그 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거울을 세상의 중심으로 삼는다. 세상이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고, 세상의 찬사가 자신에게 집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나르시시즘, 혹은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의 그림자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자기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깊고 오래된 결핍의 산물이다. 어린 시절 무시되거나 과잉 칭찬 속에서 자란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닌 조건부의 자아상을 만들어낸다. 사랑받기 위해 강해야 하고 특별해야 하며 뛰어나야 한다는 왜곡된 믿음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자기애는 생존 방식이다. 자존감이 아닌 자기 과시로 자신을 세우고 타인의 인정 없이는 존재 의미를 잃는다. 하지만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당당해 보인다. 화려한 언변, 당당한 태도, 스스로를 거침없이 칭찬하는 말투 그러나 그 속엔 쉽게 무너지는 유리탑이 숨어 있다. 조금만 비판을 받아도 분노하거나 무시로 되갚으며 자신의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 방어기제를 동원한다.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랑을 소유하려 한다. 그들은 상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하고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통해 정체성을 유지한다. 그래서 사랑은 일방적이고 조건적이며 타인은 언제나 그들의 감정과 자존감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관계 속에서 그들은 지배하려 하고, 인정받으려 하며 끊임없이 우위를 점하려 한다. 상대가 독립적인 감정을 드러내거나 그들을 거절할 때 그들은 격렬히 무너진다. 이런 취약성은 종종 분노, 무관심, 혹은 갑작스러운 이탈로 나타난다. 진정한 교감이나 상호 존중이 아닌 ‘이기지 않으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뒤흔든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핵심에는 '나는 특별하다'는 신념이 있다. 그러나 이 특별함은 온전한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통해 간신히 유지되는 정체성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나만을 사랑하는 것. 나머지, 부족하고 연약하고 두려움에 떠는 자신은 외면하고 억누른다.


그리하여 결국 이들은 깊은 외로움 속에 갇히게 된다. 누구보다 사람을 원하면서도 진정한 친밀함을 두려워한다. 마음을 열면 그 연약함이 드러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역할’ 속에 살아간다. 이상적인 연인, 완벽한 리더, 무결한 성공가도를 걷는 존재. 그렇게 허상을 지키기 위해 진짜 자신을 버리고 스스로조차 진정 누구인지 잊게 된다.


정신의학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치료가 쉽지 않은 영역으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거나 도움을 구하는 것 자체를 자존심의 상처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치유는 ‘나’라는 이름의 집을 다시 짓는 작업이다.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과거의 결핍을 받아들이며 온전한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깊은 회복을 이끈다. 타인의 시선을 떠나 자신을 바라보고 비교와 경쟁을 넘어 관계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다면 비로소 그들은 거울을 벗어나 진짜 세상 속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누구나 나르시시즘의 파편을 마음속에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나를 증명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갈망이 집착으로 변하고 타인을 무시하거나 이용하게 되는 순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진짜 사랑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더 빛나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라도 괜찮은 존재로서의 나. 나르시시즘은 그 반대편에서 속삭인다. “널 사랑하려면, 먼저 완벽해져야 해.” 하지만 속삭임은 거짓이다.


거울 앞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질문의 끝에서야 우리는 진짜 사랑의 문턱에 서게 된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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