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욕 대신 푸념, “거참 얄궂네”의 미학

by 은파랑




강원도 사람은 잘 욕하지 않는다.

대신 푸념한다.

"거참 얄궂네…"

짧고 맥없는 한마디

그러나 그 속엔 참아낸 날들의 무게가 실려 있다.


이곳의 말은 겨울 아침의 김 같다.

금세 사라지지만 사라지기 전까지는 따뜻하다.

입김처럼 흐릿한 말 그러나 속은 끓고 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안다.


강원도의 말은 조용히 오래 참다가

정말 더는 못 참겠을 때

그제야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욕보다 오래 남는다.


"거참 얄궂네"는 미학이다.

화를 낼 수도, 따질 수도 없는 상황 앞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꾹 누르며 내뱉는

존엄한 푸념이다.


인문학자들의 말대로

언어는 그 지역의 삶의 철학을 품는다.

강원도 사람의 푸념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지혜가 되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상황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황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 했다.

강원도의 푸념은 그 의미 부여다.

누구 탓도, 자신 탓도 하지 않으며

"참, 거시기하네…" 하고 말끝을 흐린다.

흐림 속엔

명확하지 않은 삶과

명확하지 않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강원도의 언어문화는 '관계 유지'에 집중한다.

서로 상처 주지 않고

말로 엇갈리지 않도록

격한 감정을 눌러 담는다.


"뭐, 살아봐야 알지."

단념이 아니라 연민이다.

이해보다 공존을 택하는 말의 방식


그리고 과학은 말한다.

언어의 억제는 감정의 조절로 이어지며

집단 내 갈등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원도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욕 대신 푸념을 택했다.

그래서 푸념 속에 사람의 향이 남는다.


“거참 얄궂네.”

그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말 같지만

사실 가장 많은 걸 말하는 말이다.

이해도, 체념도, 애정도

한마디에 담긴다.


강원도는 오늘도 그 말을 꺼낸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흐를 때

그 말은 삶의 브레이크다.

욕하지 않고, 울지도 않고

조용히 혼잣말하듯 흘려보낸다.


그게 강원도의 방식이다.

말이 적을수록 마음은 깊어진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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