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욕은 드세지 않다.
그러나 가볍지도 않다.
그 욕은 말끝이 아니라
말끝이 닿지 못한 침묵의 연장이다.
말을 삼키는 입술,
한참을 눌러둔 뒤, 조심스레 내뱉는 한 마디
“참말로 별꼴이야…”
그 속엔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강원도 사람들은
화를 낼 줄 몰라서가 아니라
화보다 먼저 견뎌야 할 것들을 알았기에
산처럼 말을 눌러 왔다.
산비탈을 일구고, 눈보라 속을 걸으며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고,
감정보다 생존이 더 절실했다.
그래서 욕도, 함부로 허투루 뱉지 않았다.
인문학자 미셸 드 세르토는
일상의 언어가 권력과 억압에 맞서는 미시적 전략이라 했다.
강원도의 욕은 그 전략의 침묵한 전사다.
노골적이지 않다.
비꼬지 않는다.
다만 말끝을 흐린다.
“거 참…”
그게 다다.
그러나 그 안엔 수십 년을 눌러온 마음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억제된 감정은 때로 더 오래간다.
프로이트는 말하지 못한 감정은 무의식에 남아
삶의 방식이 된다고 했다.
강원도 사람들의 욕은
무의식의 언어다.
불쑥 튀어나오지 않는다.
삶 속에서 조용히 스며 나오고
그것조차 누군가가 다치지 않도록 둥글게 감싼다.
사회학적으로 이곳은
서로를 오래 보고 살아야 하는 공동체였다.
언 한마디가 곧 관계의 균열이기에
욕은 입 밖보다 속에 두었다.
말 대신 일로, 감정 대신 손발로 풀었다.
말을 줄이면 사람은 남는다.
그래서 이곳의 말은 짧고 마음은 길다.
과학자들은 말한다.
높은 산에서 사람의 말소리는 멀리 퍼지지 않는다고
자연의 이치는 강원도의 말에도 스며들었다.
멀리 나가지 않는 말
소리보다 무게가 큰 말
그 말은 산과 함께 눌러두는 것이었다.
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욕을 내면에 묻어두는 삶.
강원도의 욕은
결국 사람을 해치지 않기 위한 침묵의 기술이었다.
말끝을 흐리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산은 다 말하지 않는다.
강원도의 욕도 그러하다.
산과 함께 눌러둔 말의 끝
그 끝은 늘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