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바람을 절여낸 향기
흑산도
남도의 외로운 섬
짙푸른 파도와 검푸른 하늘이 맞닿는 그곳에서
강렬한 향기가 난다.
바람도 쉬어가는 섬 끝자락의 작은 집 마당
항아리 속 깊숙이 숨어 있는 한 조각의 바다
홍어다.
홍어는 익지 않는다.
썩지 않는다.
스스로를 발효시켜
가장 날카롭고 가장 깊은 맛으로 거듭난다.
맛은 바람처럼 거칠고
향은 파도처럼 사납다.
“훅. 쿡. 아찔.”
콧속을 뚫고, 머릿속까지 찌르는 향에
누군가는 젓가락을 놓고
누군가는 술을 부른다.
흑산도의 홍어는
몸에 암모니아를 품은 생물의 숙명
소금 한 줌
온도와 시간
그리고 섬의 공기가 만든 기적이다.
숨을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 속에
살은 점점 투명해지고
향은 점점 짙어진다.
코끝을 찌르는 향 너머로
식감은 상냥하다.
쫀득쫀득, 쫄깃쫄깃
혀끝에 매달려 은근히 맴도는 맛
껍질에선 꼬들꼬들한 바다의 잔해가
속살에선 부드럽고도 깊은 산미가
혀를 맴돌다 목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김치와 수육, 그리고 홍어
삼합은 조합이 아니다.
매운 것과 담백한 것
그리고 발효의 광기가
입 안에서 서로를 껴안는다.
"쓱. 쩝. 콰앙!"
그건 맛의 폭풍이다.
그 안에서 낯설지만 강한 위로를 받는다.
홍어는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다.
육지로 오는 배가 귀하던 시절
멀고 먼 흑산도에서 서울까지
썩지 않게 보내기 위해
오히려 썩도록 놔두었다.
발효의 지혜가
지금의 풍미를 만들었고
길 위엔 노동과 그리움이 배어 있다.
흑산도 홍어는
날것을 견디고, 숙성을 넘은 존재
그것을 먹는다는 건
자신의 바다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거부할 수 없는 향
그러나 한번 빠지면 멈출 수 없는 중독
그건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맛의 각성이다.
홍어는 말이 없다.
대신 향으로 말하고
시간으로 설득한다.
흑산도 바람 속에 숨겨진
오래된 시 하나
바로 홍어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