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위안의 그릇
새벽, 광주의 재래시장 골목
장화에 진흙이 묻은 채
노점들이 하나둘씩 불을 밝힌다.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김 한 줄기
향기 따라가면
뜨끈한 뚝배기 하나가
잠든 속을 먼저 깨운다.
선지해장국이다.
광주 사람의 피처럼 뜨겁고
눈빛처럼 정직한 음식
피를 뭉쳐 만든 선지
핏빛에서 검붉음으로 굳은 덩어리는
생명을 닮았다.
거칠게 보면 잔인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숭고하다.
선지가
팔팔 끓는 뼈국물 속에
“퐁당.” 떨어지는 순간
진짜 광주가 시작된다.
국물은 맑지 않다.
붉고 탁하고
진하고 무겁다.
그러나 그 속엔
얼큰한 고춧가루
들깨가루의 고소함
마늘의 매콤함
무청과 숙주의 숨결이 어우러져
“훅. 칼칼. 얼큰.”
속을 휘감는다.
젓가락으로 떠올린 선지는
탱글탱글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는다.
입천장에서 혀로 눌렀을 뿐인데
핏덩이가 아니라
부드러운 기억이 터진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장국 끓이시며
“속 풀리게 한 그릇 해라잉”
말씀하시던 새벽이 되살아난다.
광주의 선지해장국은
분노로 타올랐던 시대
깊은 상처를 안고도
또 일어서야 했던 사람들
그들에게 해장국은 아침의 용기였다.
눈물 삼키고
국물 삼키고
다시 살아내는 일상
모든 것이
뚝배기 속에서 끓어오른다.
이 음식은 정직하다.
숨기지 않고
꾸미지 않는다.
고깃국의 힘
채소의 숨결
선지의 진심
모두가
광주의 흙과 땀과 눈물을 닮았다.
광주 선지해장국
그건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피의 시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붉은 온기
속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풀린다.
뚝배기를 비우고 나면
입술엔 아직도 얼큰함이 남고
가슴엔 묵직한 위로가 자리 잡는다.
순간, 광주는
뜨거운 국물로
우리 곁에 있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