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호두과자

작고 따뜻한 시간의 씨앗

by 은파랑




충청도의 중심, 천안

기차가 멈추는 순간

플랫폼에 먼저 퍼지는 건

기적 소리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아닌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

그건 바로

작고 둥근 호두과자의 향기다.


노릇노릇 부풀어 오른 반죽 속에

잘게 다진 호두알과 달콤한 팥소가

포근히 숨겨진다.

바삭하지 않고, 바스러지지도 않는

폭신폭신, 말랑말랑한 결

입에 넣는 순간

“몽글. 사르르.”

작은 과자 하나가

입 안 가득한 감성을 터뜨린다.


호두과자 속엔

팥의 부드러움

호두의 고소함

밀가루 반죽의 따뜻함이

고르게 녹아 있다.

작은 틀 안에서

모든 것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맛


그래서일까

누구의 입에도 거슬리지 않고

누구의 입에도 반가운 맛


호두과자의 시작은

1934년, 천안역 앞 작은 제과점에서였다.

당시엔 귀한 호두를 넣은 것이 큰 화제였고

인기는 전국을 누볐다.


기차를 타는 사람마다

손에 한 봉지, 마음에 한 그리움

서울로, 대전으로, 목포까지

천안의 호두과자는

시간과 향수를 함께 실어 나르던

작은 타임캡슐이었다.


호두는 충남의 특산물이었고

팥은 서민의 단맛이었고

과자는 잠시 머무는 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모든 것이 합쳐져

천안은 정(情)이 남는 도시가 되었다.

누군가의 여행이 시작되는 곳

혹은 끝나는 자리에서

호두과자는 늘 따뜻한 작별의 인사였다.


지금도 천안역 앞에는

호두과자 굽는 기계 소리가

“칙칙. 찰칵.” 이어지고

노릇하게 익어가는 과자 냄새는

지친 이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한입 속에는

기차에서 흘려보낸 창밖의 풍경

손을 흔들던 가족의 모습

그리고 누군가의 기다림까지

조용히 들어 있다.


천안 호두과자는

한 입에 담긴 풍경

한 봉지에 담긴 추억

그리고 한 도시의 정체성


그건 작고 동그란 시 한 편

천천히 굽고, 조심스레 나눠야 할

달콤한 시간의 씨앗이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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