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묵호항 방어)

겨울 바다에 잠든 은빛 칼날

by 은파랑




동해는 말이 없다. 오직 물결이 말을 대신하고

물결 끝, 묵호항엔 겨울이 되면 은빛 물살을 가르며 돌아오는 생명 하나, 방어(防禦)가 있다. 칼날처럼 날렵하고 눈처럼 청결한 살결의 고기, 묵호 사람들은 그것을 겨울이 내려준 선물이라 부른다. 방어는 겨울에 가장 맛있다. 살이 차오르고, 기름은 찰랑찰랑 넘치며 혀 위에 미끄러지듯 녹아드는

맛은 포근한 겨울 이불속처럼 진하고 부드럽다.


묵호항 부두 끝 선술집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를 때

방어회는 얼음 위에 얹혀 말없이 입을 기다린다. 탱글탱글 씹히는 뱃살 한 점, 쫀득쫀득 부서지는 등살 한 점, 간장은 조심스럽게 묻혀야 하고 생강과 고추는 풍미를 살포시 건드릴뿐이다. 묵호의 방어는 깊다. 그것은 크기나 무게 때문이 아니다.

수심 깊은 동해를 거슬러 올라오는 길, 역류를 견디며 단단해진 몸. 그것이 방어다. 1m 가까이 자란 대방어는 회 한 점마다 바다의 시간이 느껴지고, 피로가 녹고 속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신기한 마법이 시작된다.


묵호항에선 방어 철이 되면 마을이 조금 들뜬다.

거센 파도에도 고깃배는 다시 항구로 들어오고

횟집마다 은빛 생선이 산처럼 쌓인다. 한 어부가 말했다. “방어는 참 묵직한 놈이야. 그걸 낚을 땐 손끝이 얼어도 몸은 뜨거워져.” 묵호의 방어는

그런 바람 속 땀방울과 함께 온다. 겨울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살점 한 점에 기름장 찍어 밥 위에 얹어 주시며 말한다. “이게 묵호 겨울의 맛이란다.”


묵호항 방어는 마음으로 먹는 음식이다. 차진 결은

누군가를 오래 생각한 듯하고 고요한 고소함은 말 못 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 같다. 묵호의 겨울은 차갑지만 그 속에 담긴 방어 한 점은 세상 어떤 국물보다 뜨겁다. 묵호항에서 겨울을 먹는다는 건

한 점의 회 안에서 계절과 바다, 사람과 기억이 만나는 일이다. 방어는 모든 것을 침묵 속에 안고 있는 생선이다. 묵직하고 단단한 맛은 오늘도 누군가의 추위를 천천히, 깊게 덥히고 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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