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욕은 늦게 온다. 모음이 한 번 더 늘어나고 숨이 한 번 더 고인다. “거 좀” 하고 멈칫하다가 끝내 선을 그으며 도착한다. 소리의 결은 낮고 뜻의 선은 분명하다.
역사는 이 말의 속도를 정했다. 논과 강, 장터와 역참의 고장. 급박함보다 농사의 호흡이 긴 곳에서 사람들은 해와 그늘로 시간을 쟀다. 서두르지 않는 입놀림 속에 삶의 결이 묻어났다.
욕은 공동체의 규칙을 다시 긋는 작은 의식이다. 금을 넘은 행동 앞에서 칼 대신 말로 경계석을 세운다. 모욕이 아니라 경고, 추방이 아니라 복귀의 신호가 된다.
천천히 내뱉는 말은 심장을 달래고 감정을 식힌다. 충청의 욕은 일종의 안전밸브다. 터지지 않게 그러나 막지도 않게 눌린 감정을 최소한의 압력으로 외부에 흘려보낸다.
느린 욕은 상대의 얼굴을 남겨둔다. “알아, 그러나 안 돼.” 공동체의 평온은 그런 문장 위에 선다. 갈등의 비용을 낮추고 관계의 고리를 끊지 않는다.
점성 높은 유체가 마찰음을 줄이듯 충청의 욕은 언어의 점도를 높여 폭발을 완화한다. 음높이는 낮고 의미는 선명하다. 그래서 오래간다.
충청도 욕은 느리게 도착하는 정의다. 늦게 왔지만 돌아갈 말은 없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