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한우

붉은 결, 시간을 씹는 음식

by 은파랑의 토닥토닥


강원도 횡성은 산이 낮게 숨을 고르고 바람이 길게 흐르는 곳이다. 초지는 사계절의 빛을 머금고 그 위를 걷는 소들은 시간처럼 느리다. 이곳의 공기는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의 안개는 풀잎에 맺혀 잠시 머물고 해는 늦게 올라와 오래 머문다. 그래서일까, 횡성의 하루는 늘 한 박자 느리게, 하지만 더 깊게 흐른다. 그런 느림 속에서 한 점의 고기가 길러진다.

횡성한우는 풀과 바람, 사람의 손길이 오래 엮여 만든 결과물이다. 숯불 위에 올려지는 순간, 치익하고 울리는 소리는 이 음식의 서막이다. 기름이 녹아내리며 불꽃과 닿는 짧은 찰나, 공기에는 고소함이 번지고 시간은 잠시 멈춘다.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그러나 단단한 결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씹을수록 쫀득쫀득하다. 육즙은 톡 하고 터지며 혀 위를 적신다. 그 맛은 부드럽다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계절이 아니라 몇 해의 시간이 응축된 감각이다.

횡성한우를 이루는 것은 고기만이 아니다. 초지에서 자란 풀, 옥수수 사료, 맑은 물,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재료다. 근내지방이 촘촘히 박힌 마블링은 느린 성장의 흔적이다. 빠르게 키우지 않고 계절을 따라가며 자란 소는 결이 다르다. 결은 입안에서 풀어지며 단맛과 감칠맛을 동시에 남긴다. 곁들여지는 것은 단순하다. 굵은소금, 마늘 한쪽, 때로는 상추 한 장이다. 과한 양념은 이 고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덜어낼수록 본질은 또렷해진다.

횡성한우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농가에서 기르던 소가 시장으로 나가고 품질이 입소문을 타며 이름이 붙었다. 이후 횡성이라는 지명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가을이면 열리는 한우 축제에서 사람들은 고기를 굽고 나누며 웃는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바라보는 얼굴들에는 공통된 표정이 있다. 기대와 안도 그리고 작은 축복이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횡성한우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을 씹는 일이다. 입안에서 풀어지는 고기의 결은 우리가 잊고 지낸 느림을 다시 불러온다. 빠르게 소비하고 잊어버리는 시대 속에서 이 한 점은 말한다. “좋은 것은 오래 걸린다.” 그래서 우리는 불판 앞에서 잠시 조용해진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비로소 맛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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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은파랑. 토닥토닥' 출간작가. 복잡한 마음을 단순하게 풀어내는 글을 씁니다. 지친 하루에 작은 쉼이 되는 문장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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