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생각 Jun 03. 2024

정말 좋아한다면

    아내랑 얘기하다 어쩌다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나 저나 둘 다 혼자 식당에서 밥 먹는 걸 매우 어려워한다는 건 진즉에 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의 경우 혼자서도 식당에 가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오롯이 음식에만 집중해 식사를 하고 온 경험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내에게 '가만 생각해 보니 혼자서 식당에 가 즐겁게 밥을 먹고 온 일이 있었다'라고 하자 아내는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집에서도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양반이 식당에 가서 편안하고 즐겁게 밥을 먹고 온 적이 있다니요. 언제 그리고 어떻게 혼자 밥을 잘 먹고 왔던가 생각해 보니, 특정 식당의 음식이 꼭 먹어보고 싶어  음식에 몰두해 밥을 먹었을 때 남 눈치를 까맣게 잊고 맛있게 밥을 먹고 왔었습니다.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번 없긴 했지만 그런 적이 있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와 비슷했던 다른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겨울, 막 영국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무렵. 어릴 적부터 무척 좋아했던 일본 락 밴드 Ellegarden이 10년의 공백을 깨고 다가오는 5월 일본에서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연이라고는 작은 인디 밴드가 하는 소규모 공연을 친구들 따라 고작 한 두 번 가본 게 다였던 저였지만, 그 소식을 듣고는 진지하게 혼자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지도 일본으로 갈까 고민했습니다. 혼자 가서 어색하지는 않을지, 일본어 하지도 못하는데 어렵지는 않을지, 어떤 난관들이 있을지 같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Ellegarden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결국 돈도 부족했고 학교 중간고사 시기와 겹쳐 가지는 못 했지만 가능했다면 혼자라도 분명 기꺼이 갔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정말로 좋아한다면, 남 눈치나 쪽팔림 따위는 생각지 않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을 혼자서 당당하게 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일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그때 그 사람들이 이해가 갔습니다. 몇 년 전 아내가 졸라서 같이 갔던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 그곳에서 혼자 와 콘서트를 즐기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콘서트장을 혼자 와서 즐길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은 정말 레이디 가가를 좋아했기에, 혼자 콘서트 장에 간다는 건 생각할 거리도 아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만약 어떤 곳을 혼자 가기가 멋쩍다면 그건 그 일을 정말 좋아한다기보단 적당히 관심이 있는 정도라 남의 시선을 고려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과연 나는 어떤 곳을, 어떤 일을 혼자서도 당당하게 개의치 않고 할 수 있나 생각해 봤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래 일들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게 당연할 수도 있을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아래 일들이 혼자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지도 모를 일입니다.


-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혼자 식당 가기: 홍대 박용석 스시라던가, 모닭모닭의 닭꼬치에 생맥주라던가, 부산 늘해랑 국밥이라던가

- 정말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 공연 가기: 캐스커, Ellegarden, 한로로, SURL, 카 더가든 등등

- 벚꽃 축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보고 싶어 20대 초반에 커플들이 득실득실한 벚꽃 길을 혼자 신나게 걸었던 기억이...

- 볼더링: 늘 혼자 씩씩하게 재밌게 잘 가는 실내 클라이밍

- 산책, 조깅 및 자전거 라이딩


반대로 평소 혼자 가기/하기 싫어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냥 먹는 한 끼 식사: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 정말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아닌 각종 공연: 참고로 외향적으로 보이는 내향적인 성격입니다.

- 전시 및 각종 행사

- 오프라인 옷 쇼핑

- 여행

매거진의 이전글 '돈이 많은 것'과 '멋진 것'은 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