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57 사랑이라는 이름의 비극
영화 '원더 힐'
우디 앨런 감독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원더 힐'은 1950년대 코니 아일랜드의 놀이공원이 배경입니다
우디 앨런 감독은 일탈을 꿈꾸다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의미로
코니 아일랜드의 대관람차(원더 힐)를
영화의 소재로 삼았답니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거장의 손을 거치면 분별없는 사랑도
예술의 옷을 걸치게 되는 걸까요?
인생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비극까지도
아름다운 예술의 꽃으로 피어날까요?
대관람차를 타면
하늘 가까이 오를 수 있으나
땅을 떠난 즐거움은 잠시 잠깐이고
한 바퀴 돌면 다시 제자리에 멈추게 되죠
인생과 사랑이라는 가혹한 비극은
동화 속 세상 같은 놀이공원이라 해도
비켜가는 법이 없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지니(캐이트 윈슬렛)
희곡을 공부하며 여름에는 해변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
지니의 새 남편의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
세 남녀의 엇갈리는 로맨스가
한 편의 연극처럼 펼쳐지는데
무늬만 로맨스고 사실은 막장입니다
영화의 배경인 놀이공원에 나들이 나온
인생은 한바탕 소풍 같은 비극인 거고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에서
웃고 울고 사랑하고 상처 받으며
떠나고 또 남는 배우들인 거죠
대개는 조연이나 엑스트라
때로는 무심한 배경이 되고
어쩌다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인생이라는 이름의 무대에서
주인공의 어깨에 얹힌 무게는 만만치 않고
걸어가야 하는 길 또한 녹록지 않아요
영화의 무대는 놀이공원이지만
인생의 무대는 놀이공원이 아니니까요
한때 배우였던 지니는
자신이 지금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 연기를 한다고 상상하며
배우였던 시절을 그리워하죠
스스로 비극적인 결함을 가졌다며
인생의 비극을 연극 대사처럼 중얼거리는
지니 역의 케이트 윈슬렛은
슬프도록 연기를 잘해서 더 안쓰러워요
'타이타닉'의 사랑스러운 그녀가 아니라
인생의 매운 쓴맛을 아는 중년의 여인
케이트 윈슬렛은 연기의 맛을 아는
진정한 배우가 되었어요
헛소리만 하는 라디오를 듣는다고
지니를 타박하는 남편 험티와 달리
연하의 남자 믹키는 다정하고 로맨틱하죠
해변에서 7구역 안전요원으로 일하며
인생의 비극을 쓰겠다는 믹키에게
지니는 고백합니다
절망하여 물에 빠지려는 순간
안전요원 믹키가 인생의 피날레를 망쳤다며
35 살이 아니고 39 살이라는 그녀의 말에
믹키는 자신이 운이 좋다며 웃어요
결혼했으니 남편이 있고
첫 결혼에서 낳은 아이가 있다는 고백에도
아름다운 유부녀를 본 게 처음이 아니라며
로맨틱한 대사를 날려대는 사랑스러운 청년
별빛만으로도 글을 읽을 수 있다는
믹키에게서 지니는 위로와도 같은
사랑의 빛을 찾아냅니다
인생을 활기 넘친 리듬으로 연주하던
첫 남편은 초록빛 눈동자의 재즈 드러머였는데
지니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자
상처와 굴욕감으로 떠나가버렸고
그가 떠난 후 처음으로 사랑이 뭔지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고 지니는 후회해요
산산조각 난 마음으로
연기도 못하고 일자리를 놓치고
아들 리치와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새 남편 험티를 만났으나
사랑 없는 결혼이었던 거죠
첫 번째 사랑에게서는 사랑이 뭔지 배웠으나
험티에게서는 어떤 게 사랑이 아닌지 알았다며
아름답지만 비극적 약점이 있다는 지니는
자신의 실수까지도 믹키에게 털어놓으며
비를 싫어했으나 이제 비를 볼 때는
믹키의 눈으로 본다고 말합니다
지니에게 믹키는
빗줄기 속의 한 줄기 희망의 빛인 거죠
아들 리치는 애정 결핍으로
자꾸만 불장난을 하며 말썽을 피우고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 험티는
지니가 좋아하지 않는 낚시 타령을 계속하죠
서로의 머릿결을 부러워하는 새엄마 지니와
남편의 딸 캐롤라이나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요
둘 사이에 믹키가 끼어들게 되거든요
캐롤라이나를 만난 안전요원 믹키가
햄릿을 아직 읽지 않았다는 그녀에게
무식한 게 죄가 아니라며
햄릿과 오이디푸스 책을 빌려주고
다 읽으면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는 말에
지니의 질투와 히스테리가 발작합니다
갱스터와 결혼 후 밀고하고 쫓기는
캐롤라이나에게 첫눈에 반한 믹키는
빗속에서 차로 데려다주며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하고
책 속에서 지식을 배운 믹키와
경험으로 세상을 배운 캐롤라이나는
서로에게 호감으로 다가섭니다
지니에게 두통만 주는 생일파티 후
믹키의 이야기에 흥분하는 지니는
믹키가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캐롤라이나에게 멀리 하라고 하지만
캐롤라이나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믹키는
자신이 작가라 로맨틱이 과하긴 해도
캐롤라이나를 본 순간 귀에서 종소리가 났다며
지니와의 사연을 고백합니다
캐롤라이나는 믹키의 배웅을 거절하고
혼자 산책로를 걷다가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지고
지니가 구할 수 있었음에도
방관했다고 의심하는 믹키는
이미 식어버린 사랑 곁에서 떠나가죠
한 편의 연극이 끝난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유니폼을 챙기며 일상으로 돌아오는
지니의 모습이 안쓰럽고 가련합니다
가혹한 현실에 짓눌린 듯 불안해 보이는
케이트 윈슬렛의 적나라한 표정 연기와
툭툭 쏟아내는 황폐하고 거친 내면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아름답지만 저마다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인생의 배우들이 삶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안고
대관람차 한 바퀴 돌고 돌아 어김없이
제자리에 돌아와 멈추는 이야기가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지만
뭐 사랑이 그렇고
인생 또한 그런 것 아니겠어요?
사랑도 인생도 아름다운 판타지가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사랑의 도피를 꿈꾸듯이
현실의 도피도 함께 꿈꾸지만
한바탕 스치고 지나간 폭풍우처럼 상처만 남긴
짧은 꿈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지니의 삶은 또 그렇게 계속되겠죠
놀이공원의 원더 힐이 다시 한 바퀴
헛된 꿈을 안고 돌아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