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01 어쩌다 봄봄
민요 소설극장 '다시 봄'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민요 소설극장 '다시 봄'을 봅니다
김유정의 '봄봄'과 이상의 '봉별기'
두 소설과 구전 민요 창작음악을 조합한
옴니버스 형식이랍니다
'봉필이라 쓰고
욕필이라 읽는다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우리 아버지 지독한 욕필이
지독한 자린고비'라고 노래하네요
봉필 영감은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의뭉한 장인어른이죠
어느 해 봄날 아파트 화단에
산수유 몽글몽글 노랗게 피어날 무렵
엄마랑 김유정문학촌에 갔던 생각이 납니다
가는 길에 들른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겁쟁이라 무서워 차마 걷지 못하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소양강 처녀'
동상 곁에서 노래만 듣다가
경춘선 김유정역 건너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에 들러
시린 봄바람 파고드는 산책로도 거닐고
아늑하고 적막한 생가도 들러보았죠
담장 옆에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 꽃이 몽글몽글 노랗게 피어나
생강나무 꽃에서 생강 내음이 나는지
킁킁 맡아보던 생각이 납니다
그 생강나무가 '동백꽃'에도 등장하는데
강원 영서지방에서는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이라 불렀답니다
그러니까 김유정의 '동백꽃 '은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 꽃인
노란 동백꽃인 거죠
김유정의 생가 연못 옆 닭싸움 동상도 보고
외양간이랑 디딜방아간도 들여다보고
마당에 서 있는 '봄봄' 주인공들의
동상 곁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어리숙한 데릴사위 '나'와 장인 영감이
쪼매난 점순이를 가운데 두고
키를 재어보며 실랑이를 벌이는
재미난 장면입니다
주인집 딸 점순이와 혼인하려고
순박하고 어수룩한 데릴사위로
우직하게 일만 하던 머슴 ' 나'가
점순이의 키가 다 자라지 못했다는 핑계로
혼례를 미루는 의뭉한 장인어른에게
빨리 혼례를 올려달라고 생떼를 부리다가
오히려 당하는 웃픈 얘기죠
장인어른과 몸싸움까지 벌이는데
점순이가 자기편을 들지 않고
아버지 편을 든 것이 못내 이해가 되지 않는
순진한 '나'란 사람이 웃음을 줍니다
김유정의 집안은
실레마을 제일 부자였다고 해요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라고 나오죠
산에 묻힌 마을의 모습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아서
실레라 부른답니다
그의 작품 중 '봄봄' '동백꽃' 등이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천석꾼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단한 삶을 살며
당대의 명창인 기생 박녹주를 흠모했으나
불꽃같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3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의 봄날 인생은
한없이 고달프고 쓸쓸했으나
그의 고향집에 드는 봄볕은
여전히 정겹고 따사로워
안타까움을 조금은 달래줍니다
김유정 문학촌에 갔던
봄나들이 추억이 떠오르고
봄바람에 살랑이는 기억들이
생강나무 노랑꽃처럼 망울망울 되살아나
그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사랑이 그리고 봄날이
문득 쓸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