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7 외로움과 사라짐에 대하여

영화 '시드니 홀의 실종'

by eunring

로건 레먼과 엘르 패닝의

풋풋한 조합이 마음에 들고

천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달콤 쌉싸래한 미끼에 낚였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서 만난

그 쪼꼬미 엘르 패닝의 어여쁨에 끌리고

사랑스럽고 청아한 미소에 반해서

독특한 분위기로 과거와 현재를

쥐어짜듯 넘나들며 제멋대로 오고 가는

혼란스럽고 어둡고 울적한 영화를

에라 모르겠다~끝까지 봅니다


젊은 인기 작가 시드니(로건 레먼)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집니다

도서관에 있는 시드니의 책이 불에 타고

시드니의 실종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실종의 이유와 시드니의 아픈 사연들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한 겹 한 겹 드러납니다


시드니는 풋볼선수 아빠와 치어리더 엄마의

고등학교 졸업파티의 실수로 태어나

사고로 장애를 가진 아빠의 장애연금으로 살아가며

아들 시드니에 대란 원망과 집착으로

사사건건 구속하는 엄마로 인해 불행합니다


문학소년 특유의 감성과 천재적인 글솜씨로

주변의 핀잔을 받기도 하다가

시드니의 재능을 인정한 영어 선생님이

출판사에 연결해주지만

친구 브렛의 아버지의 부정한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그의 발목을 잡게 되죠


함께 신고하기로 시드니가 맡아둔 테이프를

엄마가 보고 시드니의 일기까지 읽어보고는

불같이 화를 내며 벽난로에 던지는 바람에

비디오테이프는 타 망가지고 증거가 없어져

시드니는 친구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을 억압하고 괴롭히고 학대하던

아버지를 폭로할 증거인 테이프를 잃은 친구는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고

자신의 탓으로 친구가 죽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드니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자 친구 멜로디(엘르 패닝)와 함께 떠나요


친구의 죽음을 소재로 소설을 써

퓰리처상 후보에까지 오르지만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공황장애까지 겪으면서 마음의 병에 시달리다 바람까지 피워 멜로디와 헤어지게 됩니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다며

임신중인 멜로디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지만

함께 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갇힌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식을 앓던 멜로디는 호흡 곤란으로 안타깝게 죽어요


멜로디의 곁에서 노래를 부르는

시드니의 아픔이 절절합니다

'내 사랑이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

그녀의 심장소리 들을 수 있다면

그녀가 내 곁에 누워만 있다면

다시 잠들 수 있을 텐데

내일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면

내게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그러나 숨을 쉬지 않는 멜로디의 모습이

흑백의 장면으로 이어지며

차마 슬프다는 소리조차 낼 수도 없게

아프고 먹먹합니다


도시의 불빛 하나

잠깐 깜박이다 사라지는

아주 작은 불빛 하나일 뿐인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려고

옷 몇 벌 챙겨 떠난 시드니가 기다리는 것은

멜로디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서른 살이 되는 5월 25일입니다


시드니는 덧없는 희망을 안고

멜로디와의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만

개 호머와 함께 집으로 들어서는 시드니가

네모난 큰 창으로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는

쓸쓸함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요


호머라는 이름은 시드니가

태어나게 될 아기에게 붙여줄 이름이었죠

딸이면 헬렌 아들이면 호머라고 생각한다는 시드니에게 멜로디가 웬 호머냐고 물었을

오디세이의 호머도 아니고

심슨의 호머도 아니고

우리의 호머라고 대답했거든요


'안녕 호머 우리가 기다리던 순간이야'

시드니가 탁자 위에 꺼내놓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목각인형과

와인과 두 개의 잔과 사진 한 장이

더없이 적막합니다


트로이 전쟁 승리 후 귀향길에서

키클롭스의 눈을 찌르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 10년간 방황하다

집에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생각나는 장면이기도 해요


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시드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몸은 망가졌으나 정신은 또렷한 시드니는

몇 년간 끄적인 글들을 프랜시스에게

마음대로 쓰라고 건네고

멜로디 곁으로 갑니다


"아직 네 곁에 있어 우리 아기와 함께'

멜로디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평온히 잠든 그의 곁에 멜로디가 있어요

시드니와 멜로디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호머

그들이 저 하늘에서 행복하게 빛나기를~


시드니와 멜로디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손짓으로 배웅하는 아버지의 미소와

활짝 웃는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과 함께

시드니의 글 뭉치와 프랜시스

그리고 시드니의 흑백사진으로

외로움과 사라짐의 영화는 끝이 납니다


아픔 없는 영화 없고

아픔 없는 인생도 없지만

아픔이 있는 곳에 상처를 어루만지는

다정한 손길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드니의 실종'을 갈무리합니다


누구나 외롭고

누구든 사라지는 것이니

외로움과 사라짐은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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