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5 마술과 과학 사이
영화 '프레스티지'
마술과 마법은 다른 거죠
마술은 눈속임이고
마법은 불가사의한 술법입니다
마술이 하나의 기술이라면
마술과 과학기술 사이 그 어디쯤에
'프레스티지'가 있을 것 같아요
'프레스티지'는
마술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무늬만 마술이고
최고가 되고 싶은 인간의
부질없는 집착에 관한 비극적인 이야기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은
눈과 귀를 집중하는
몰입의 즐거움이 있어요
물론 영어가 짧으니
대사를 듣고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귀 기울이면 다가서는 미세한 느낌이 있고
보고 또다시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그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기도 합니다
매 순간 긴장과 집중이 필요하지만
이제는 그것에서도 벗어나
대충 보고 다시 또 보다 보면
얼기설기 이어지기도 해요
어쨌거나 시간의 흐름이
반듯하거나 순차적이지 않아서
이야기의 가닥과 매듭을 챙겨가며
차분히 눈여겨봐야 하긴 합니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수고는 기꺼이 해야죠
마음을 기울인 만큼 나에게 오는 거니까요
프레스티지(prestige)는
최고의 마술 비법을 뜻한답니다
잘 보고 있느냐는 알프레드의 질문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마술이 성행하던 시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마술 공연의 3단계에 대한 커터의 설명이 이어져요
1단계는 뭔가를 보여주는 평범한 트릭
2단계는 갑자기 사라지는 대전환
3단계는 다시 짠~ 나타나는 프레스티지
뒤이어 로버트의 순간이동 마술 장면이 나옵니다
마술 장치 기술자 커터(마이클 케인)에 의하면
마술 공연의 3단계는 순간이동 마술이랍니다
높이 날아오르는 새일수록
추락의 고통은 더 크다고 그가 말하죠
상류층 귀족 집안의 로버트 앤지어(휴 잭맨)와
고아 출신 알프레드 보든(크리스찬 베일)은
최고의 마술사를 꿈꾸는 친구이면서
선의의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로버트는 마술에 대한 열정을
알프레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죠
알프레드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엄청난 일을 벌이려는
두 명의 젊은이들이었어요
마술에 매료된 철부지들이었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답니다'
그러나 철부지 두 젊은 마술사의
엄청난 비극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손발을 묶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더 완벽한 수중 마술을 위한
알프레드의 이중 매듭 때문에
로버트의 아내 줄리아가 죽게 되자
두 사람은 마술사로서 각자의 길을 걸으며
질투하고 경쟁하고 방해도 하면서
최고의 마술 비법에 집착하게 됩니다
집착은 젊은이들만 한다며
커터는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한다 하고
집착은 파멸을 부른다고
테슬라(데이비드 보위)가 경고하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두 마술사의
광기 어린 집착이 비극을 불러오죠
로버트가 새장 마술을 연습하며
새를 죽이기 싫다고 하자
'넌 마술사지 마법사가 아니야
언젠가는 손을 더럽혀야 한다'며
멋진 마술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커터의 말이 서글프고
미녀 조수는 관객들의 시선을 돌리기에
효과적인 장치라는 말도 씁쓸합니다
로버트의 아내 줄리아(파이퍼 페라보)
로버트가 사랑하는 올리비아(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알프레드의 아내 사라(레베카 홀)
모두 마술쇼의 장치 같아서 안타까워요
알프레드의 사랑한다는 말에
사라의 말 '오늘은 진심이네'
'비밀은 내 삶이고 우리의 삶'이라는
알프레드의 비밀을
사라는 이미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진심이 아닐 때 더 힘들다고 하죠
속임수와 거짓말과 비밀이 싫다는
사라의 말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마술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집착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과
거듭되는 반전이 놀랍고
과학자 테슬라의 등장도 흥미롭습니다
영화에는 잠깐 등장하지만
실제로 천재 과학자 테슬라와
노력하는 발명가 에디슨은
동업자이면서 경쟁관계였다고 해요
영화의 두 주인공과 비슷합니다
열정과 집착이 불러온 비극이 안타깝고
최고의 마술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듯한
두 친구의 이야기가 씁쓸하지만
마술과 과학기술 그 어디쯤의 '프레스티지'
영화는 재밌어서 저절로 집중하게 됩니다
집착 따위
내다 버려야죠
무엇에 대한 집착이든
무엇을 향한 집착이든
쌓아두지 말고 내다 버리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