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6 향기를 봅니다

영화 '영주'

by eunring

향기를 봅니다

딸기처럼 예쁜 향기를 봅니다

영주라는 이름의 열아홉 소녀 역을

꾹꾹 눌러 담는 아픔으로 연기하는

배우 김향기를 봅니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철없는 동생을 보살피는 가장이 된 영주는

사고를 내서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한

이들에 대한 복수를 생각했던 거죠


그러나 '아줌마 아저씨가 좋아져서

그럴 수 없게 되었다'라고

진실을 밝히고 싶어졌다는 영주의

아픈 진심이 슬픔으로 향기롭습니다


동생 영인의 합의금 때문에

가게 금고에 손을 대는 영주에게

'영주야 넌 좋은 애야

아줌마는 알 수 있어'라고 오히려 다독이는

향숙(김호정)의 진심도

아름답고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영주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생 영인에게

'내가 왜 미안해해야 되는데

미안해야 될 사람은

엄마 아빠 아니야?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야

그냥 그렇게 죽어버리면 다야?

우리 버리고 죽어버린 엄마 아빠보다

지금 우리한테 훨씬 더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영주는 열아홉 살 어린 소녀죠


아픔을 딛고 홀로 서기 위해서는

다독임과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하고

눈물도 실컷 흘리며 울 수 있어야 하고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한 영주가

식물인간으로 쌕쌕 숨만 쉬고 있는

향숙의 아들을 보며

'넌 좋겠다'라고 중얼거릴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아들과 영주를 위해 기도하며

어떻게 영주의 얼굴을 보느냐는

향숙의 눈물도 쓰리고 아파요

상문(유재명)의 무겁고 울적한 표정도

공감의 깊이를 더하게 해 줍니다


내내 울지 않다가

막판에 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우는

열아홉 살의 소녀 영주를 봅니다

영주 역에 녹아들어가

후련한 눈물로 흘러내리는

향기의 진심을 봅니다


새콤달콤 딸기 향내 대신

진심의 꽃 향기를 잔잔히 건네는

향기의 눈물을 봅니다

울음을 거두고 천천히 걸어가는

향기의 뒷모습에서 건너오는

인생의 슬프고도 따사로운

희망의 향기를 봅니다


슬픔을 소란스럽지 않게

아픔도 번잡하지 않게

차가운 현실도 따뜻한 진심으로

품어 안아주는 영화 '영주'의 향기는

잔잔하고 먹먹한 여운이

한참 오래 남을 것 같아요


먹먹한 여운이 물러간 자리에

희망의 향기가 샘물처럼 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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