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03 소리를 그리다
드뷔시 '바다'
흐린 하늘을 내다보며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를 봅니다
음악이니 귀로 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음악과 마주하고
비대면으로 바다를 봅니다
구름과 바람이나 냄새처럼
움직이는 대상의 순간적인 인상을
음악에 담으려 했던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음악은 바람과 하늘과 바다처럼
무한한 존재들로부터 용솟음쳐 나오는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이므로
음악을 학문적인 틀 속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옳으신 말씀~
음악뿐 아니라 그 무엇도
틀 안에 가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교향시 '바다'에서
드뷔시는 바다의 이미지를 선율이 아닌
자유롭고 다채로운 빛깔로 표현했답니다
순간순간 변하는 바다의 표정과
벅찬 움직임을 소리로 그려낸 것이죠
드뷔시가 프랑스의 내륙지방에서
바다를 바라보지 않고 상상하며
음악으로 그린 '바다'를 들으며
바다를 기억하고 추억합니다
순간순간 달라지는 물빛과 바다색
그리고 바다의 표정과 분위기와
철썩이는 파도의 춤사위와
바람의 노래를 보고 듣습니다
음악은 색과 리듬을 가진
시간으로 되어 있다고 말한 그는
음악이 그림보다 더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음악으로 빛과 색과 움직임까지도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드뷔시가 담아내려고 한
유동적 대상의 결정체가 바로
바다였다는데요
교향시 '바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상기네르 섬들의 아름다운 바다
파도의 유희
바람이 바다를 춤추게 하네'
3개의 교향적 스케치라는 부제에
3개의 표제가 붙어 있답니다
1악장은 바다 위의 새벽부터 한낮까지
2악장은 파도의 유희
3악장은 바람과 바다의 대화
논리보다 감각
느낌과 표현을 중시하며
다양한 음색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음악으로 그려낸 '바다'를 들으며
한 자락 파도가 되어보기도 하고
한 줄기 바닷바람이 되어보기도 하고
바다색을 품은 하늘이 되어보기도 합니다
'바다'를 쓰기 시작한 다음 해
드뷔시는 아내 릴리를 버리고
엠마 바르다크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여
곡이 완성될 때는 아내가 바뀌었답니다
이 곡의 초연 2주 후
그들의 아기가 태어났고
드뷔시와 엠마의 결혼은
그로부터 수년 후에야 인정받았다고 해요
어쨌거나 드뷔시는
바다를 무척 사랑했답니다
'나는 태생이 뱃사람이야
그런데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서
이렇게 작곡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니까요
바다를 사랑하고 그리워한 드뷔시가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아닌
기억과 상상 속에서 그려낸 '바다'는
흐린 날이나 바람 불어 스산한 날
바다가 그리운 날 혼자 듣기에 좋은
아름다운 소리 그림입니다
가만 눈을 감으면
사랑과 인생의 파도와 바람이
나에게로 아름답게 밀려왔다가
씁쓸한 발자국 남기며 밀려가는 것 같아요
바다도 음악도 결국은 인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