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24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다

영화 '보이후드'

by eunring

믿고 보는 세계의 명화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바꾸어 생각해봅니다

내가 세계의 명화를 붙잡는 게 아니라

세계의 명화가 나를 붙잡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고개 끄덕이며

'보이후드'를 봅니다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섯 살 소년의 눈동자가 왠지 슬퍼 보이고

우두커니 TV를 들여다보는 소년의 눈매가

한없이 외로워 보입니다


귀여운 여섯 살 소년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와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철없는 딸이었다가 준비도 없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엄마 올리비아(패트리샤 아퀘트)와

셋이서 살다가 엄마의 학업과 재혼 등으로

할머니 댁 근처로 이사를 가죠

친구들을 두고 낯선 도시로 이사를 다니며

메이슨은 외롭게 자랍니다


아빠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

나풀나풀 자유 영혼이라

주말에 만나 볼링을 하거나

야구장이나 캠핑을 가긴 하지만

함께 살 수는 없어요


인생에는 범퍼가 없답니다

볼링을 치다가

공이 자꾸 옆으로 빠지자

범퍼가 있으면 좋겠다는 메이슨에게

'범퍼 올리고 스트라이크를 치면

아무 의미 없는 거'라고 아빠가 말하죠


자연스럽게 대화하자는 친아빠와는

수다쟁이 친구처럼 지내지만

선을 지키자는 잔소리쟁이 새아빠의

알코올 중독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갑자기 낯선 학교로 전학을 가기도 하는

외로운 소년 메이슨의

12년간의 성장 기록이랍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12년 동안 촬영되었다고 해요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가 12년 동안

매년 15분 분량씩을 찍으면서

12년 동안의 모습을 사진첩에 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한 영화랍니다


메이슨과 누나 사만다의

성장 기록이기도 하고

아빠 메이슨의 성장 기록이기도 하고

준비 없이 엄마가 되었다가

깨지고 부딪쳐가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엄마 올리비아의 성장 기록이기도 합니다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메이슨이 대학생이 되어

자신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하자

서운한 마음에 던지는 올리비아의 말이

인생의 허무함으로 덥석 다가옵니다

모든 인생 거기서 거기니까요


이제 남은 건 늙음과 죽음이라는

인생은 그렇게 아픔과 실망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문득 돌아보면 아련한 기억 속에서

괜찮은 순간들을 불쑥 만나게 되기도 하죠


영화의 말미에서

메이슨과 친구가 나누는 대화가

참 멋집니다


'그런 말 자주 듣잖아

이 순간을 붙잡아야 한다고

근데 난 거꾸로인 것 같아

우리가 순간을 붙잡는 게 아니라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야'


'맞아 시간은 영원한 거니까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마무리처럼 던져지는

멋진 대사 덕분에

그런대로 괜찮은 영화였어요

인생은 바로 지금이라는

그 어려운 걸 또다시 해나가야 하는 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우리 인생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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