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55 운명의 두드림 소리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중 2 때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삶은 달걀을 먹고 있는데
따따다 단~ 운명의 두드림 소리가 들려왔어요
베토벤의 운명적인 교향곡 '운명'을
음악시간에 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죠
학교 음악실에서 들을 때는
아주 크고 묵직한 운명의 발자국 소리가
솔솔솔 미 파파파 레~로
커다랗게 쿵쿵대며 다가왔었는데
집안 어딘가에서 친구의 오빠가 듣는
'운명'은 작고 나지막하고 울적한
운명의 두근거림으로 다가왔어요
친구와 삶은 달걀을 먹으며 들었던
따따다 단~운명의 두드림 소리는
그 무렵 푹 빠져들어 읽던
'데미안'의 구절들과도 손을 잡으며
중2 인생의 두근거림으로 다가왔었죠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그래서 나에게 베토벤의 '운명'은
한 마리 어린 새가
알을 깨뜨리는 따따다 단~
운명의 두근거림 소리로 다가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프락사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헤세의 '데미안'은 내게
베토벤의 '운명'과도 같은
운명의 두드림 소리와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영혼의 두근거림으로 남아 있어요
어두운 불행이 성큼 다가오는 듯한
묵직한 분위기의 따따다 단~에 대해
베토벤은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라고
제자에게 말했다는 일화가 있는데요
음악의 성인이라 불리는
악성 베토벤은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귀가 멀기 시작해 '운명'을 작곡할 무렵
걷잡을 수 없이 청각이 망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극적인 운명은 느닷없이 그렇게 다가와
거침없이 문을 두드린다는 의미였을까요?
베토벤이 작곡한 9개의 교향곡들 중
제5번 '운명'은 37세의 작품으로
'C단조 교향곡'이 원제목이랍니다
베토벤이 숲길을 걷다가
삐삐삐 삐~우는 새소리를 듣고는
집으로 달려가 솔솔솔 미~
운명이 인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단숨에 그려냈다고 해요
현악기와 클라리넷의 웅장한 소리
따따다 단~으로
운명이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고
갈등하고 좌절하며 운명에 맞서다가
마침내 운명을 넘어서는
기쁨과 감동을 표현했던 거죠
베토벤은 제자에게 말했대요
'결코 운명에 굴복할 수 없지
나는 이 운명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져
결고 놓아주지 않을 거야'
베토벤의 철학이 담긴 C단조는
그의 작품에 두루 쓰인답니다
C단조로 시작해 C장조로 끝나
울적한 비탄으로 시작하지만
눈부신 환희로 마무리하는 거죠
슬픔의 끄트머리에서
희망이 피어나는 것처럼~
땅 속 어둠을 비집고
새 순과도 같은 희망이 돋아나고
마음속 슬픔을 끌어안고
여린 꽃망울 닮은 기쁨이 맺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