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56 슬픔이 주는 다정한 위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by eunring

슬픔에도 힘이 있고

슬픔이 주는 위로가 깊은 바닷속처럼

적막하고 고요한만큼 다정하고 따사롭다는 걸

베토벤의 '비창'을 들으며 새삼 느낍니다

아름다움 속에 잔잔히 슬픔이 깔려 있고

눈부신 슬픔 속에 다정한 위로가 스며 있어요


빗소리 들으며

친구랑 나눈 깨톡 문자 속에

마음의 그릇이 들어 있었죠

빗소리를 담는 그릇도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 그릇도

저마다 크기가 다르다는 말을 나누며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만큼 느끼자고 했는데요


베토벤의 음악은 날개가 커다래서

그 안에 몸과 마음을 넉넉히 누일 수 있어요

그토록 큰 음악의 날개를 펼쳤다는 건

듣는 이를 품어줄 수 있을 만큼

더 많이 크게 아팠다는 것이죠


베토벤은 위대한 음악가지만

살아생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해요

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늘 불안했고

경제적으로도 몹시 가난하고

음악가의 생명인 귀까지 멀게 되는

불운하고 비극적인 인생이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의 깊이는

아픔의 깊이만큼 크고 묵직하고

한없이 깊숙하게 느껴집니다


베토벤의 강인함이 녹아든 슬픔

묵묵함 속에 숨어 있는 여리디 여린 아픔이

작고 어린 새의 솜털 같아서

가만 숨을 죽이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커다란

슬픔의 날개가 덮어주는 위로 속에

여리고 보드랍고 섬세하고

애틋한 솜털의 느낌이 보송해요


바흐의 평균율 48곡이 구약성서라면

피아노의 달인 베토벤이 작곡한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에 비유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월광' '열정'과 함께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로 사랑받는

'비창'은 베토벤 스스로

'비창적 대 소나타'라고 이름 붙였답니다


비창(悲瘡)이란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프다는 것이고

소나타는 울려 퍼지다 연주하다는 의미니까

'비창적 대 소나타'는

크고도 깊은 상처와 슬픔이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음악인 것이죠


서정적인 멜로디 속에

강인하고 아름다운 열정을 안고 흐르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위로가 친숙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 부르게 됩니다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희망의 꽃과도 같은

'비창'을 듣다 보면

초록 이파리들 사이에서 살랑이며

노랑꽃 이파리들을 스치는

보드라운 바람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슬프지만

주저앉아 슬퍼할 수만은 없는 간절함이

바람의 손끝을 따라 흐르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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