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41 연잎에 구르는 빗방울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by eunring

목소리에 형태가 있다면

아마도 물방울이나 빗방울 닮은

투명 구슬이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의 마음 안으로 곱게 굴러가서

아련한 파랑 그리움도 되고

분홍빛 설렘도 되어 머무르려면

투명하고 영롱하고 모나지 않은

구슬 모양이어야 할 것 같아요


연잎에 떼구루루 구르는 빗방울은

방울방울 그리움을 부르는 소리를 닮고

풀잎 끝에 매달린 해맑은 이슬방울은

사랑으로 오롯이 맺혀있어요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에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소녀

니시미야 쇼코가 나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니 말하지도 못하는

니시미야의 목소리는 형태가 다르답니다


전학생 니시미야가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말이 아닌 글씨로

노트에 써서 펼쳐 보입니다


소리가 없는 니시미야의 목소리는

동그라미이기도 하고 네모이기도 하고

세모이기도 하고 점 하나이기도 하고

아예 아무것도 아니기도 해요


소리가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게 아닌데

전학생 니시미야는

목소리의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서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재미 삼아 니시미야를 괴롭히는

이시다 쇼야는 따분한 걸 참지 못하는

철부지 소년이었죠

이시다의 짓궂은 장난에도

생글생글 애써 밝게 웃으며 지내던 니시미야는

이시다의 장난이 점점 심해지자

견디지 못하고 다시 전학을 갑니다


니시미야를 괴롭히던 이시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자 친구들은

모두 이시다의 탓으로 돌리고

이시다는 그만 외톨이가 되고 말아요


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이시다의 눈에는

모조리 ×표로 가려지면서

이시다는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숨죽이며 지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니까요

눈으로 마주할 수 없다는 건

마음으로도 마주할 수 없다는 거죠


6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이시다가 내미는 손을

니시미야는 머뭇거림 없이 잡아줍니다


이시다가 죽을 생각을 하고

니시미야에게 사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니시미야를 찾아가서

그동안 배운 수화로 마음을 전하는데요

형태가 뚜렷한 목소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로 나누는 대화인 거죠


'니시미야는 자기와 함께 있으면

내가 불행해진다고 했다

니시미야를 불행하게 만든 건 난데'

이시다의 말이 뾰족하니 아파요


그런데요 다리 위에서 다시 만난

친구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릅니다

우에노는 잘못을 인정하긴 하면서도

'니시미야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니시미야 탓을 하죠


카와이는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슬며시 회피해버리고

사하라는 우에노와 카와이

둘 다 무서웠다고 털어놓고

나가츠카는 이시다에게 괜찮다고 하지만

이시다 곁에는 니시미야 혼자만 남아요


니시미야의 손을 붙잡고

이시다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발 한 번만 힘을 주세요

싫다며 도망치지 않을게요

내일부터 친구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게요

내일부터 친구들의 목소리도 제대로 들을게요

내일부터는 무엇이든 제대로 할게요'


이시다는 니시미야를 구하려다

물속으로 떨어져 다치게 됩니다

다친 이시다가 병원에 입원하자

니시미야는 이시다를 위해

친구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내가 무너뜨린 걸 되돌리고 싶어'

니시미야의 간절한 부탁에

카와이는 "힘들다고 죽는 건 말도 안 돼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있어

그건 다들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자신의 부족한 부분까지도

아끼고 사랑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해

이시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사하라의 대답은

'난 자신이 없어

이시다가 깨어나도 얼굴 볼 낯이 없어

난 변하지 못했거든 여전히 겁쟁이야

이번에도 널 지키지 못했어'

니시미야는 앞으로 변하면 된다고 하죠


이시다는 깨어나지 못하다가

꿈속에서 니시미야를 만나고는

마침내 깨어나 니시미야를 만나러 가서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옛날 일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어

그 이후에 있었던 일도 아주 많이 미안해

난 아무래도 너에 대해

내 멋대로 생각했던 것 같아'


니시미야와 마주 앉은 이시다가

서툰 수화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뭉클한 진심이 가득합니다


'난 포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아니었어

나도 계속 너처럼 그런 생각을 했는데

역시 죽을 만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

모두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걸

니시미야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이시다는 그렇게 다시 시작합니다

거울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연습을 하고

자전거 타고 니시미야를 만나

벼이삭이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가을길을 달려 학교에 갑니다


물론 생각처럼 쉽지 않아요

이시다는 학교에서 여전히 겉돌고

반가워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해

바닥을 보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죠


이시다가 깨어나기를 빌며

수염을 길렀다는 나가츠카도 고맙고

천마리 학을 다 모으지 못했다는

카와이도 사랑스럽고

낯간지러운 친구 놀이라며

닭살 돋는다는 까만 머리 우에노도 귀여워요


친구들과 함께 축제 마당을 돌아보며

이시다는 드디어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시다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때

친구들의 얼굴에 붙어 있던 ×표가

후드득 떨어져 나가는 장면이 인상적이고

자꾸만 눈을 비비며 눈물을 닦는

이시다의 눈앞에서 친구들 하나하나

모두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엔딩이 흐뭇합니다


새삼스러운 눈길로 주변을 돌아봅니다

혹시라도 내 말이나 내 눈짓에

상처 받은 누군가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사과하고 싶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과 다르게

내 뜻이 분명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마음에 뾰족한 손톱자욱이 났다면

그건 변명의 여지없이 내 탓이니까요

미안하다고 손 내밀어 사과해야죠

내 탓이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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