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91 고요한 산책의 시간
베토벤 '전원'
전원생활은 겉보기에
여유롭고 느긋하고 평화롭지만
전원주택을 관리하며 사는 건 쉽지 않으니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 한 사람 있으면
가끔 들러서 잠시 잠깐의 쉼을
더불어 누릴 수 있다는
얄미운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전원주택에 살지도 않을뿐더러
살아볼 생각은 해본 적 없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 1도 없어 조금 아쉽다 싶을 땐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들으며
아쉬움을 달래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얼마 전 전원주택으로
갓 이사를 한 친구가 생겼는데요
이럴 때 대박 횡재라는 말을 쓰면
아~ 얄미운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까요?!
베토벤이 귓병을 치료하기 위해
빈 교외 하일리겐슈타인의
전원에서 여름을 보낼 때
작곡했다는 '전원'
그 무렵 베토벤은 귀뿐 아니라
건강 상태도 아주 좋지 않아
유서까지 써 놓은 상황이었다고 하는데
'전원'에는 자연이 건네는 평화로움과
고즈넉한 위안이 담겨 있으니
필요한 처방이었을 테죠
1악장은 전원에 막 도착한 설렘과
기쁘고 명랑하고 상쾌한 기분이
밝고 화사하게 펼쳐집니다
초록 나뭇잎새 나부끼는 소리가
사부작사부작 들려오는 것 같아요
2악장은 시냇물 졸졸졸
평온하게 흐르는 소리 위로
해맑게 지저귀는 새소리 들을
현악기와 관악기로 묘사한답니다
시냇가의 평화로운 정경이
그림처럼 눈앞에 떠오르고
새들의 울음소리가 싱그러워요
꾀꼬리는 플루트
뻐꾸기는 클라리넷으로
메추리는 오보에로 소리를 낸다니
참 재미나고 아기자기한 조합입니다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연이어 연주되어 하나의 악장인 듯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천둥과 폭풍우 휘몰아치다가
5악장은 폭풍 후의 감사한 마음과
기쁨으로 차오릅니다
베토벤의 '전원'을 듣다 보면
유리우스 슈미트가 그린
'산책하는 베토벤'이 떠오릅니다
정장 코트자락을 바람에 나부끼며
고개를 수그린 채 뒷짐을 지고
숲 속 길을 걷는 모습이 고즈넉합니다
그럼요 천재는 외로운 법~
심각한 귓병을 앓던 베토벤에게
고요한 산책의 시간은
평온한 위로의 순간이었을 테죠
숲길을 걸을 때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한
베토벤은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답니다
그만큼 자연의 숨결에 마음을 기대며
위로를 받았다는 의미겠죠
베토벤이 매일 습관처럼 걸었다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은
'베토벤의 산책로'가 되었다고 해요
그 숲길에서 영감을 받은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6번에 '전원'이라는
평화로운 이름을 선물했다니
멋진 작명 솜씨 엄지 척~
음악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는 전원의 정경이 아니라
전원에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전원'에 담았나 봅니다
베토벤은 음악으로
자신의 삶을 고백한 것이라는
신학자 카를 바르트의 말을 되새기며
'전원'을 듣고 싶은 오늘은
꾸무럭 여름 장마의 첫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