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의 계절이 돌아왔어요
마트에서 무화과를 만나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먼저 와락 달려듭니다
무화과는 가을의 맛이고
어린 소녀시절 추억의 맛이죠
어릴 적 기억 속 작은아버지댁 마당에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거든요
사촌들이랑 마당에서 재미나게 놀다가
무화과를 따 먹던 달달한 기억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으로 추억을 집어 들 듯
무화과 한 상자를 덥석 집어 듭니다
나에게는 꼬맹이 소녀시절의 과일인데
여왕의 과일이라고 쓰여 있네요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애정하고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르던
귀족 과일이라고 해요
달콤하고 부드럽게
사르르 녹아드는 무화과는
보드레한 복숭아 철이 지나가면
조르르 뒤를 이어서 오는 가을 과일이죠
무화과로 가을의 맛을 살린 디저트나
가을 시즌 한정 음료들이 나온 걸 보면
지금이 딱~제철인가 봅니다
말랑하고 둥근 물방울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이 재미나고
반으로 자른 단면에 배시시 드러나는
수줍은 듯 보드레한 붉은빛이 고와요
9월부터 11월까지 먹을 수 있으나
추석 무렵이 가장 맛있어서
지금 때를 놓치면
일 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말려서도 먹고 무화과 잼으로도 먹지만
생과로 먹을 때 가장 맛있답니다
은은한 향에 맛과 영양까지 듬뿍 담긴
무화과는 기특하게도 병충해에 강해
농약을 쓰지 않는 안심 과일이래요
살살 씻어서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믿음직한 건강 과일이죠
껍질까지 먹어도 연하고 부드러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요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은
꽃이 없는 열매라는 의미지만
겉으로 드러나게 보이지 않을 뿐
실제로 꽃이 피어 있다는군요
어쩌다 이름은 무화과지만
꽃잎이 없어 꽃의 모양이 다를 뿐
무화과 열매가 바로 꽃인 건데요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갸름한 주머니처럼 부풀면서
무수히 많은 작은 꽃들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주머니 속에 살며시 숨어버리는 거죠
꽃이 숨어 있는 꽃자루와 꽃받침이
열매처럼 보이는 것이니
꽃이 열매고 열매가 꽃인
신비스러운 과일입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에 다녀와 쓴 견문록 '열하일기'에
처음 본 무화과를 이렇게 소개했답니다
'잎은 동백 같고
열매는 십자 비슷하다
이름을 물은 즉 무화과라 한다
열매가 모두 두 개씩 나란히
꼭지는 잇대어 달리었고
꽃 없이 열매를 맺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쫓겨날 때
부끄러움을 가린 나뭇잎이 무화과 나뭇잎이라
금단의 열매가 무화과라는 얘기도 전해지고
꽃이며 열매인 과실을 줄 뿐 아니라
넙죽하고 무성한 나뭇잎이 그늘을 드리워
쉼과 휴식과 평온함까지 덤으로 건네는
고마운 나무랍니다
무화과를 먹을 때는 여왕처럼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는 마음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살며시 숨은 꽃 속에
가만가만 숨어 있는 어린 날의 추억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보며 먹어야겠어요
인생이 타이밍이듯
과일도 가장 맛있는 때가 있으니
놓치지 않을 거예요
어린 소녀시절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숨은 꽃 속에 머물러 있는
가을날 추억의 맛 무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