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53 계절의 종이 울릴 때

폰키엘리의 '시간의 춤'

by eunring

계절이 나풀나풀 춤을 춥니다

저 혼자 신명나게 춤을 춥니다

쌀쌀맞게 바람 불다가 비도 내리다가

우수수 덜 익은 단풍잎도 날리다가

금빛 햇살 반짝반짝 남의 거실 창문을 넘나들며

어깨 툭 치고는 뭐하냐고 묻는 듯해요

이 좋은 날 콕 박혀 뭐해?


이 좋은 가을날 콕 박혀

놀다 쉬다 졸다 멍 때린다~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피식 웃고 맙니다

누가 물어보기나 했냐고~

얄미운 햇살은 어느새 달아나고

어둡고 시린 저물녘이 금방입니다


하루의 시간이 순삭이라는 말 그대로

잠깐의 순간인 듯 금방이고

빠르게 저무는 하루해가 덧없는

가을이라는 이름의 계절이

창밖에 적막하게 머무르다

휘리릭 사라집니다


밀당할 사이도 아닌데

제멋대로 불쑥 찾아왔다가

손 내밀면 달아나는 계절과 인생은

서로 닮아서 좋은 친구가 되기 어려운가 봐요

계절 따로 인생 따로 제각각의 리듬으로

누가 더 빠른가 내기라도 하듯이

빠르게 더 빠르게 춤을 추는 사이에서

어정쩡 엇박자로 밍기적거리다 보면

하루해가 순삭이고 한 계절이 후다닥이고

지루해 보이던 세월도 어느새 금방입니다


디즈니의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환타지아(Fantasia)' 제6장에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시간의 춤'이 나오죠

타조와 하마와 코끼리와 악어 등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들이

'시간의 춤' 음악에 맞춰 깨방정을 떨며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잔망스럽게

춤을 추는 장면이

즐겁고 신나고 재미납니다


새벽은 다리에 핫핑크 발레 슈즈 신은

우아한 발레리나 타조의 춤으로 시작합니다

타조의 무리들이 잠에서 깨어나

깃털을 털며 몸을 풀고

칼군무를 추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낮에는 프리마 발레리나 하마가

도도한 베이글녀 매력 뽐내며

분수에서 수줍게 솟아 나오고

저녁은 귀여운 코끼리

깜깜한 밤은 비글미 넘치는

발레리노 악어의 춤으로 이어지다가

하마와 악어 커플의 밀당춤 한바탕 후

피날레는 모든 동물들이 다 함께 빙글빙글

날아갈 듯 빠르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뽀그르르 시간의 물방울들에 휩싸이며

신나고 사랑스럽고 발랄하게

시간의 춤을 마무리합니다


상상력 뿜뿜 디즈니의 제안에 따라

제작진들이 '시간의 춤' 발레 장면을 찍어

무용수들의 동작을 연구하고

동물원에서 동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해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고 재미난

발레 영상을 완성했다고 해요


'시간의 춤'은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탈리아 오페라 아밀카레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에 나오는 발레 음악입니다


오페라 제목이기도 하고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라 콘다'는

베네치아 거리의 노래하는 가난한 여인인데요

빅토르 위고의 희곡을 바탕으로

아리고 보이토가 대본으로 각색하여

폰키엘리가 4막의 오페라로 만들었다고 해요


3막에 나오는 발레곡 '시간의 춤'은

오페라보다 더 유명해진 발레곡으로

오페라와 상관없이 자주 연주된다고 합니다

새벽과 낮과 황혼과 밤이라는 하루의 시간을

발레 동작에 어울리게 묘사한 것인데

24명의 무용수가 각각 6명씩

시간을 나타내는 옷을 입고 춤을 춘답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분위기와 정서를 빛과 무용수들의 의상과 춤으로

밝고 화려하고 명랑하게 보여주는 거죠


오페라 '라 조콘다' 3막에서는

알비세 공작의 아내 라우라의 죽음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장면에 흐르는 비정한 곡이지만

어둡고 비극적인 오페라의 분위기를 위로하듯

뛰어난 선율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곡이죠

슬픔과 기쁨 등 온갖 감정들이 어우러지며

캉캉의 리듬과도 같이 엄청난 빠르기로

마무리되는 매력적인 곡이랍니다


모든 것들이 시간과 함께 스쳐가듯이

인간의 한평생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간과 함께 나풀대며 춤을 추다가

시간을 따라 소멸해가는 것이니까요


'시간의 춤'을 듣다 보면

시간이 우리를 떨쳐 버리고

한 마리 새처럼 날아가는 것만 같아요

음악의 빠르기 못지않게

시간은 그리도 빠른 걸음으로

우리 곁에서 매정하게 달아나고

세월과 인생은 그보다 더 빠르게

우리를 두고 무심히 날아갑니다


그러나 계절의 종이 울릴 때

노란 은행잎 비처럼 흩날려 내리며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아요

시간이 춤을 추며 달아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종은 어김없이 그대를 위해 울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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