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71 시래기처럼 묵묵히

시래기와 우거지

by eunring

엄마랑 아침마다 동네 한 바퀴까지는 아니고

아파트 앞마당을 한 바퀴 돕니다

천천히 돌면서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곱게 물들어 훌훌 지는 단풍잎도 보고

감들이 주홍으로 주렁주렁 매달렸다가

휑해지고 까치밥만 두어 개 남은

감나무도 잠시 올려다봅니다


어느 집 베란다에 줄줄이 매달린

무청 시래기를 쳐다보며

우거지라고 했다가

넌 시래기도 모르냐~는

엄마의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무의 잎과 줄기인

무청을 말리면 무청 시래기

배추 겉잎을 말리면 배추 시래기랍니다

무청이나 배추 등 푸성귀 말린 것을

뭉뚱그려 시래기라고 한다는군요


우거지는 푸성귀의

겉 이파리를 말하는 것이니

시래기와는 분명 다른 거죠

푸성귀들이 한겨울 찬바람을 맞아가며

완전히 마르면 비로소 시래기가 된답니다


친구님의 무청 시래기 사진이

가을볕 아래 유난히 싱싱해 보입니다

'해마다 실패하는

무청 시래기 말림인데

올해도 또 해놓고 갑니다

자알 말려지면 맛나게 볶을게요'


햇살과 찬 바람맞으며

친구님의 무청 시래기가

바작바작 말라 가는 모습을

가만 상상해봅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말라 구수한 맛을 내는

영양가 듬뿍 시래기나물로 변신하기를~


된장국이나 무침이나 조림 등에 쓰이는

무청 시래기는 겨울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건강식품인데

특히 된장과 잘 어울린다고 해요

구수한 맛을 더해 주면서

된장에 부족한 비타민까지 보충해준다니

야무지고 똘똘한 식재료인데요


시래기 뭉치라는 말이 있답니다

얼굴이 못생긴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래요

잔뜩 찌푸린 얼굴을 우거지상이라고 하죠

시래기와 우거지가 예전에는

그다지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한때는 하찮게 여겨지던

시래기와 우거지가

요즘은 구수하고 정겨운 고향의 맛과

아련하고 푸근한 추억의 맛에 더하여

겨울철 별미에 건강식품으로

환영받고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시래기와 우거지처럼

세상에 버릴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추위와 찬바람을 묵묵히 견디며

영양 듬뿍 부드럽고

구수하고 맛 좋은 시래기가 되듯이

하찮아 보이는 것들도 다 제자리가 있고

저마다 쓸모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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