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70 애써 슬픔을 삼킬 때
대신 울어주는 누군가 있다면
날씨가 부쩍 차가워져서인지
부옇게 밝아오는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와락 슬픔이 밀려드는 때가 있어요
슬픔에 겨워도 슬픔에 주저앉지 않으리~
다짐하고 또 다짐해서 그런 걸까요
소낙비처럼 한바탕 펑펑
시원하게 울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한 방울 눈물이 반짝 맺히다 말 때가 있죠
아무도 몰래 혼자 실컷
눈물 주룩주룩 흘려가며 울고 싶어도
사막의 샘처럼 눈물이 메마를 땐
별빛처럼 영롱한 슬픔까지도
덧없이 느껴지기도 해요
철부지 꼬맹이 소녀시절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어린 나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당돌하게도 굳게 다짐했어요
밖으로 소리 내 울음으로 토해내면
내 안에 간직한 고운 슬픔이 묽어질까 봐
애써 눈물을 삼키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
눈물로 밝혀 드리고
구슬픈 울음으로 배웅해 드리라고
나이 지긋하신 친척 아주머니들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셨지만
그럴수록 이를 악물며 울음을 참아내던
참 맹랑한 철부지 계집아이였습니다
친척 할머니가 그때 곡비 이야기를 하셨어요
조선시대 노비 중에는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가 있었다죠
장례 때 잠시라도 울음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울고 싶지 않아도 울어야 하는 곡비는
품삯을 받고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었으니
울어주는 역할 대행을 했던 셈인데요
장례 행렬에도 상주 앞에 곡비를 내세워
곡비의 울음소리로 길잡이를 삼았다고 해요
구한말까지 이어졌다고 하는 곡비는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죽음을 위해
소리 내 울어주는 애잔한 역할이었던 것이죠
슬픔에 겨운 이들이 울다 지치지 않도록
남겨진 이들을 따스이 보살피고
감당해야 할 슬픔을 다독이며
죽은 이를 기억하면서 안타까움을 달래고
도리를 다하는 배려의 풍습이었답니다
눈물이 마르고
애써 슬픔을 삼켜야 할 때
곡비의 울음소리를 생각합니다
나를 대신해 울어주는 누군가 곁에 있다면
차마 울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라도 대신 울어줄 수 있다면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서로의 눈물로 따스이 다독일 수 있다면
진하고 깊숙한 마음의 슬픔까지도
보랏빛 고운 열매가 되어 배시시
고운 미소 머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