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72 덧없는 꿈 덧없는 사랑

책 이야기 '홍루몽(紅樓夢)'

by eunring

산 아래 사는 친구는

어느새 중국어 고급반이 되어

'홍루몽' 대본을 공부하게 된답니다


여주인공 임대옥이

떨어진 꽃 이파리들을 주워 모아

꽃 무덤을 만들어 주면서 울며 부르는 노래

장화음(葬花吟)'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피는 꽃 보기 쉬워도 지고 나면 찾기 어려워

뜨락의 섬돌 앞에 떨어진 꽃들을 묻어주며 안타까운 설움에 잠기네

홀로 꽃삽을 들고 남 몰래 눈물 흘리니

눈물이 빈 가지 적시며 붉은 핏자욱이 맺히는 듯

........남은 꽃도 한 잎 두 잎 떨어지듯

언제라도 인생의 봄날은 가고 홍안도 시들어

지는 꽃 따라 사람도 가는 것이니~'


인생의 덧없음으로 가득한 '홍루몽'은

어릴 적 울 할머니가 돋보기 쓰고 읽으시던

아스라한 기억 속의 이야기책인데요

읽으시다가 재미난 대목이 나오면

한 대목씩 이야기해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어린 꼬맹이가 눈을 반짝이며 듣는 모습이

손녀바보 할머니 눈에는 그저 귀엽고

마냥 사랑스러우셨을 테죠


중국 청나라 때 조설근이 지은

장편소설 '홍루몽'은 중국인들에게

소설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책이래요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는

중국인의 자존심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지만

내게는 할머니가 읽다가 내게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재미난 이야기책으로 떠오릅니다

아스라이 먼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재미난 이야기책 '홍루몽'


'홍루몽'을 쓴 조설근은

황실의 측근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귀족 가문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귀한 도련님이었으나 대 소년 시절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심리적인 아픔을 겪으며

낡은 집에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팔아서

술을 사 마시며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삼십 대에 시작하여 십 년의 세월 동안

어린 시절의 추억과 생활을 떠올리며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음식이나 의복과 일상생활 등 풍속을 담은

'홍루몽'을 썼으나 마지막 마무리를 하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남기고 마흔여덟 살 나이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고 해요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홍루몽'에는

비극적인 사랑과 덧없는 인생이 담겨 있죠

'붉은 누각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허망한 꿈과 이루지 못한 사랑

그리고 덧없는 인생을 그리는데

'홍루'는 귀족 가문의 귀한 여인이 머무르는

화려한 거처를 말한다고 합니다


주인공 가보옥은 옥구슬을 입에 물고

명문가의 귀공자로 태어나

할머니의 총애를 받으며 자랍니다

그의 주변에는 총명하지만 병약한 임대옥

건강하고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설보채

사상운 등 가까운 친척 소녀들이 있지만

그의 사랑은 순조롭지 않아요


서로 사랑하는 가보옥과 임대옥은

귀족사회의 부패와 악습에 저항하고

봉건적인 도덕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청춘 남녀였으나

그들의 꿈과 사랑은 실현되지 않죠


가보옥은 임대옥과 결혼하는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계락으로 막상 결혼하고 보니

신부는 임대옥이 아닌 설보채였으니~

사랑하는 임대옥이 병들어 죽은 것을 알게 된

가보옥은 절망하지만 그런대로 살아가다가

사랑과 인생의 허무함에

모든 미련을 버리고 집을 떠나 출가를 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가씨 가문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아요

주인공 가보옥이 인간 세상에서 겪는

19년 동안의 길고도 짧고 애틋한

인생무상을 그린 작품인 거죠


'홍루몽'의 꿈은 희망의 꿈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허망한 꿈이랍니다

홍루의 허망한 꿈이란 뜻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거대한 저택과

여성들의 화려한 거처를 의미하는

홍루의 세계가 물거품처럼 무너진다는

깊은 속뜻을 담고 있으니

지나버린 청춘과 사랑과 인생의

덧없는 꿈과도 같은 것이죠


조설근이 미완성으로 남긴

'홍루몽'은 전체 120회로 되어 있는데

80회까지는 조설근이 쓰고

나머지 40회는 고악(高鰐)이 이어 썼으며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전해지면서

중국의 고전 명작이 되었답니다

예술성은 물론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중국 봉건사회의 모든 것을 담아낸 책이라고 해요


나에게는 할머니의 재미난 이야기책으로

기억 속에서 아련한 '홍루몽'을

덧없는 한 해가 기울어가는 겨울날

따사로운 햇살이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오는

거실 창가에 앉아 천천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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