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비어갑니다
곱게 물든 나뭇잎 훌훌 날리며
나무가 휑하니 비어갑니다
화분도 함께 휑해집니다
창밖을 스치는 바람도
더불어 흐르는 계절도 휑합니다
나뭇잎 초록으로 무성할 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화분을 가득 채우던 잎사귀들이
무심히 뚝뚝 떨어져 듬성듬성
비어 가는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여백과 여운의 향기가 잔잔히 밀려듭니다
허전함이나 공허함과는 다르게
애잔한 이별의 향기가 스쳐 지나갑니다
비어간다는 건 휑해지는 거지만
휑하다는 것과 허전하다는 건
분명 다른 의미인 거죠
주위를 빙 둘러보아도
그 무엇 하나 없어 공허하거나
무언가를 잃었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처럼
서운한 느낌이 있을 때 허전하다고 하죠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지듯이 느즈러져
안정감이 없는 것도 허전한 거지만
무슨 일에나 막힘이 없이
다 잘 알아 매우 환한 것을 휑하다고 해요
구멍 따위가 그 무엇으로도 막힌 데 없이
시원스럽게 뚫려 있을 때도 휑하다고 하죠
물론 속이 텅 비어 넓기만 해서
매우 허전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계절의 비움은 허전함과는 조금 다른
휑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뭇잎 아낌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떨구며
욕심 없이 휑하니 비어 가는 나무와
그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화분을 보면서
비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겨우내 모든 것을 비운 채
휑하지만 허전하거나 공허하지 않게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을 한 그루 나무와
가난한 만큼 여유롭고 너그러운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며 바람도 맞이하고
빗물과 눈송이도 안아줄 겨울 화분에게
따스한 눈인사를 건넵니다
채운만큼 비웠으니
비운만큼 또 채워질 거라고
함께 가을을 배웅하고
겨울을 마중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