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73 이별의 향기

비움의 계절

by eunring

나무가 비어갑니다

곱게 물든 나뭇잎 훌훌 날리며

나무가 휑하니 비어갑니다

화분도 함께 휑해집니다

창밖을 스치는 바람도

더불어 흐르는 계절도 휑합니다


나뭇잎 초록으로 무성할 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화분을 가득 채우던 잎사귀들이

무심히 뚝뚝 떨어져 듬성듬성

비어 가는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여백과 여운의 향기가 잔잔히 밀려듭니다

허전함이나 공허함과는 다르게

애잔한 이별의 향기가 스쳐 지나갑니다


비어간다는 건 휑해지는 거지만

휑하다는 것과 허전하다는 건

분명 다른 의미인 거죠

주위를 빙 둘러보아도

그 무엇 하나 없어 공허하거나

무언가를 잃었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처럼

서운한 느낌이 있을 때 허전하다고 하죠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지듯이 느즈러져

안정감이 없는 것도 허전한 거지만

무슨 일에나 막힘이 없이

다 잘 알아 매우 환한 것을 휑하다고 해요


구멍 따위가 그 무엇으로도 막힌 데 없이

시원스럽게 뚫려 있을 때도 휑하다고 하죠

물론 속이 텅 비어 넓기만 해서

매우 허전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계절의 비움은 허전함과는 조금 다른

휑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뭇잎 아낌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떨구며

욕심 없이 휑하니 비어 가는 나무와

그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화분을 보면서

비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겨우내 모든 것을 비운 채

휑하지만 허전하거나 공허하지 않게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을 한 그루 나무와

가난한 만큼 여유롭고 너그러운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며 바람도 맞이하고

빗물과 눈송이도 안아줄 겨울 화분에게

따스한 눈인사를 건넵니다


채운만큼 비웠으니

비운만큼 또 채워질 거라고

함께 가을을 배웅하고

겨울을 마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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