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74 조붓한 산길을 걸으며
명징한 마음으로
찬바람 끌어안고
고즈넉한 산길을 걷는다며
산 아래 친구가 산길을 찍어 보내줍니다
조붓하고 고요하고 차가운 산길을
친구 곁에서 나도 함께 걸어봅니다
잎 떨군 나무들이 묵묵히 지켜주는
산길이 참 곱고 정갈하고 순해 보여요
그리움의 손수건처럼 큼지막하게
빈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파란 하늘이 명징해 보입니다
산 아래 사는 친구가 보내준
사진 속 산길을 마음으로 걸으며
명징(明澄)하다는 말과
조붓하다는 말을 중얼거립니다
조붓하다는 건 조금 좁은 듯하다는 말이고
조금 조붓하게 연이어 있을 때
조붓조붓하다고 하죠
밝을 明과 맑을 澄이 만나 이루어진
명징하다는 말은 깨끗하고 맑다는 뜻이래요
차가움이 한결 깊어진 늦가을 날씨가
명징하다는 말과 잘 어울립니다
조금 좁은 듯하게 이어진
조붓조붓한 산길을 걸으며
빈 나뭇가지에 걸린 파란 하늘처럼
높고도 멀고도 시린 빛으로 물들어
맑고 깨끗하게 기울어가는
늦가을 끄트머리의 시간이
말 그대로 조붓하고 명징합니다
오디오의 음질과 음색을 평가할 때
명징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대요
소리가 힘이 있고 또랑하면서
흐릿하게 흐트러지지 않고
반듯하고 단정한 상태를
명징하다고 표현한답니다
차갑고도 애틋한 하늘의 푸른빛처럼
저 홀로 맑고 깨끗한 소리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소리의 명징함은
소리의 섬세함이나 부드러움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해요
소리가 부드러우면 선명함이 부족하고
섬세한 소리는 정교함이 부족하다고 하니
세상에 완벽한 소리는 없나 봅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너무 바르고 허물이 없는 사람 곁에
친구가 따르지 않는 것과도 같은 것이죠
적당히 묻어갈 여지가 없으니까요
계절의 빛과 소리도 그러할까요?
너무 맑고 깨끗하고 선명해서
슬며시 부드럽게 스며들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사람도 그러하겠죠
너무 맑고 깨끗하고 분명하면
조붓하게 이어지는 산길처럼
선뜻 곁을 내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함께 나란히 걷기에 조금 좁은 듯하니까요
조붓한 계절의 오솔길을 걸으며
명징하다는 의미를 곰곰 생각해보는
가을의 끄트머리 시간이
고요히 깊어만 갑니다
가을과 겨울이 만나고 헤어지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시
명징한 마음이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조붓해서 외롭고 적막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