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75 미안한 마음입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by eunring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로

사과의 마음을 전하는 거야


고마워~

고맙다는 말로

감사의 마음을 건네는 거야


불어오는 바람과 손잡고

우수수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어

노랑으로 물들어 햇살 담뿍 받아 안고

노랑 이파리의 별무리 되어 잠시 반짝이다가

흔들리고 나풀대며 바닥에 내려앉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고 또한 고마운 마음이 아닐까


다 그런 거 아닐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

바람에 흔들리고 바람 따라 흩날리다가

땅바닥에 살포시 내려앉는 거 아닐까

미안한 마음은 맨 밑바닥에서 시작되는 거고

고마운 마음도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건네는

진심 가득 담은 인사가 아닐까


밤하늘의 뭇별들도 어쩌면

미안해서 저마다 나풀대고

고마워서 하염없이 나부끼며

자꾸만 손을 흔들고 또 흔들다 보니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덜 익은 초록 은행잎도 툭 떨어지고

고맙다고 진심 고마웠다고

노랗게 무르익은 은행잎들도 흐트러지며

땅 위를 맴돌다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가을 저편으로 사라지는 거지


미안하다고 중얼거리고

고맙다고 소곤거리며

그렇게 사라지고 또 사라지는 거지

그러니까 결코 덧없음이 아닌 거야

부질없이 사라지는 아니라

마음에 남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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