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83 고운 인연을 간직해요
보자기 닮은 마음으로
길가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무심한 낙엽 자루들을 봅니다
참 단정하고 야무지게도 묶여 있어서
어딘가에 반드시 쓸모 있을 것처럼 보이는
낙엽 자루들을 가만 바라봅니다
그 안에 쌓이고 또 쌓여있을
봄닐의 찬란함과 여름날의 열정과
가을날 단풍잎들의 나부낌을 봅니다
햇살과의 눈부신 만남과
빗방울 톡톡 스치듯 정겨운 인연과
바라보며 웃음 짓던 이들의 행복 미소까지도 차곡차곡 야무지게 쟁여져 있는
세월의 자루를 봅니다
며칠 후면 아름다운 인연이 담긴
그 자루들까지도 어디론가 사라져
텅 빈자리를 스치고 지나갈
바람의 차가운 옷소매를 봅니다
버린다~하면서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자~내려놓는다 하면서도
미처 내려놓지 못하고
뭉뚱그려 내 안에 끌어안고 있는
내 안의 무수한 아우성을 듣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 알뜰히 갈무리하는
보자기 같은 마음이 되고 싶었으나
이왕이면 빛깔 곱고 무늬도 부드러운
넉넉한 보자기 닮은 마음이고 싶었으나
투박한 무명 보자기 하나 되기도 쉽지 않아서
길가에 줄지어 선 낙엽 자루들이
문득 부럽습니다
차곡차곡 담으려 해도 담아지지 않고
정갈하고 야무지게 챙기려 할수록
부질없이 이리저리 비어져 나오는
시간의 미련을 끌어안고 또 하루를 보내며
길가의 낙엽 자루들을 바라봅니다
지금 흐리더라도
내일은 맑아지기를
푸르고 투명한 맑음이기를
곱고 순하고 귀한 인연들을
넉넉하고 여유롭게 간직할 수 있는
착하고 상냥한 보자기 닮은 마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