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93 가족의 풍경

영화 '13년의 공백'

by eunring

아버지 마사토(릴리 프랭키)는 무능했답니다

둘째 아들 코지가 '꿈의 구장'이라는 글로

상을 받고 아버지에게 달려가 자랑을 하지만 마작에 빠진 아버지는 무심하기만 합니다


마작과 경마 등 도박에 빠져

빚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담배를 사러 다녀온다고 나가더니

거짓말처럼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엄마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나가고

형 유시오카(사이토 타쿠미)는

엄마 대신 동생 코지(타카하시 잇세이)의

소풍 도시락을 챙겨주었대요


아버지의 빈자리에는

남겨진 가족들의 고단함이 넘쳐흐르고

제목처럼 13년의 공백 그 갈피갈피마다

원망과 미움과 그리움의 발자국이 한가득인데

아버지는 13년의 공백을 훌쩍 뛰어넘어

3개월 시한부 인생으로 나타납니다


형 유시오카는 아버지를 향해 차오르는

분노의 감정 때문에 문병조차 가지 않지만

둘째 코지는 병원으로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야구를 하며 나누던 꿈의 구장 이야기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의 애틋한 추억에 젖어들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빚 독촉 전화를 받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뿐~


여자 친구의 간절한 부탁으로

다시 찾아간 병실에서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옆자리 환자를 통해 어릴 적 자신이 쓴

'꿈의 구장' 글짓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코지는 아버지에게 한 걸음 다가서게 되죠


아버지가 세상과 작별한 후

도박하던 친구나 술집 종업원 등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은 열 명 남짓

그러나 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들이 기억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도박과 빚에 시달리는 무책임하고

무심하고 무능력한 가장이었으나

조문하러 온 지인들이 추모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의외로 따사롭습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안고

무심히 앉아 있던 형 유시오카는

장남인데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고

담담히 말하다가 밖으로 나가고 말죠


둘째 코지는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야구공 마술 연습해준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코지는 말합니다


자신이 쓴 '꿈의 구장' 글짓기를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간직해 준 것도 알게 되어 다행이고

돈이 없으면서 어려운 이웃 사람들을

챙겨준 것도 다행이라고 말하죠


아버지가 싫었지만

지금은 조금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잘 모르겠으나 지금은

슬픈 것 같기도 하다는 둘째 코지는 비로소

아버지를 향한 이해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엄마는 검정 옷을 입은 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오지 않아요

장례식이 진행되는 사이에

엄마는 아버지가 보낸 우편물을 받게 됩니다

벤치에 앉아 이혼 서류와 반지를 보다가

물끄러미 야구하는 소년들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엄마의 모습이

한없이 아련하고 적막합니다


'너무나 다정했던 당신

어린아이 같았던 당신

부엌에는 하이라이트 담배와 위스키 잔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가족의 풍경'

엔딩곡으로 흐르는

사사가와 미와의 '가족의 풍경' 노랫말이

엄마의 심정을 대신하는 것 같아요


방송 작가인 하시모토 코지의

실제 이야기를 듣고

사이토 타쿠미 감독이 영화로 만들며

큰아들 유시오카를 연기합니다


잔잔하고 담담하게 여운을 남기는

영화 '13년의 공백'은

긴 시간 동안의 공백이 그려내는

쓸쓸한 가족의 풍경입니다


사랑까지도 적막한 눈물로 아롱지는

가족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부옇게 밝아오는 아침의 빛과도 같다가

때로는 저무는 해가 남기는 그림자이기도 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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