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88 시간을 건너뛰는 위로의 편지
일본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다독이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할 때
지금 길을 잃고 안갯속을 헤매더라도
오늘보다 내일은 분명 더 나아질 거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따스함에 기대고 싶을 때
기적이란 결코 먼데 있지 않다고 속삭이며
다정하고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30년 가까이 비어 있는 오래된
먼지투성이 나미야 잡화점을 배경으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주고받는 편지와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엮이는 사연
그리고 인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동복지시설 마루코엔에서
함께 자란 좀도둑 세 친구의 이름은
아츠야(야마다 료스케)와
쇼타(무라카미 니지로)와
고헤이(칸 이치로)입니다
마루코엔의 말썽꾸러기 세 친구가
쫓기다가 나미야 잡화점 안으로 숨어들어
우연히 편지 한 통을 읽게 되는데요
알고 보니 우연이 아닌
시간의 인연이었던 거죠
먼지투성이 잡화점 안에서 세 친구는
잡화점의 낡고 오래된 물건들을 뒤적이다가
32년 전 다정다감한 주인 할아버지
나미야 유지(니시다 토시유키)가
어떤 고민이든 가리지 않고
온갖 고민 상담 편지에 친절하게
답장을 써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미야 할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잡화점 문 조그만 틈으로 툭 떨어져 들어온
생선가게 뮤지션 마쓰오카 카츠로가 쓴 편지를
어쩌다 호기심에 읽게 된 것을 시작으로
잡화점 밖의 1980년 고민이 담긴 편지가
잡화점 안 2012년 세 친구들에게 전해지고
나미야 잡화점의 조그만 문 틈 사이로
오고 가는 편지와 답장들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음악을 하고 싶으나
가업인 생선가게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생선가게 뮤지션의 고민이 담겨 있는 편지는
무려 32년 전 과거에서 온 편지였으니까요
과거로부터 날아온 첫 번째 편지를 받고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지만
32년 전인 1980년에 나미야 잡화점의
작은 문 틈 사이로 고민 편지를 보내면
나미야 할아버지가 답장을 통해
고민 상담을 해주었음을 알게 됩니다
낡고 볼품없이 오래된 나미야 잡화점은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대로 남아 있다가
좀도둑 세 친구가 숨어들어 편지를 읽게 되면서
32년 동안 소리 없이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샘물처럼 흐르게 된 것인데요
1980년의 청춘들과 2012년의 청춘들이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에서
시간을 건너뛰어 오고 가는 편지를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들 모두가
아동복지시설 마루코엔과 관련이 있으니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고 인연인 셈입니다
두 번째 고민 편지는
나미야 할아버지가 받아요
아빠 없이 혼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는 미혼모 그린 리버의
절실한 고민에 대한 할아버지의 답장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아름다움이 그려집니다
세 번째 고민 편지는
돈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려는
길 잃은 강아지 하루미의 에피소드인데요
세 친구들이 써 보낸 현실 답장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고
그 모두가 우연이 아닌 하나의 인연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오는 고민 상담 편지에
세 친구들이 엉뚱하지만 솔직한 진심을 담아
답장을 쓰고 그에 대한 답장을 받게 되는 사이에
그들 세 친구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장난 삼아 시작한 상담 편지 놀이가
흔들리며 방황하는 청춘들의 아픔을
보듬어 안는 위로의 시간으로 이어져
서로를 위한 따뜻한 기적을 만들어내는 거죠
생선가게 뮤지션이 편지를 끼워 넣고
하모니카 연주로 들려주는 자작곡이
유명가수 세리의 노래임을 알고
세 친구는 놀라기도 합니다
미래의 히트곡을 들으며 음악을 계속하라고
진심 응원하는 답장을 쓰게 되죠
생선가게 뮤지션 카츠로는
아동복지시설 마루코엔에서 노래를 하다가
미래의 유명가수 세리의 동생 다쓰를 구하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눈을 감으며
안타깝게 중얼거립니다
'아버지~저 발자국은 남겼어요
싸움에선 졌지만요'
'쓸데없는 생각 말고
한번 더 목숨 걸고 해 보라고
열심히 싸워 보고 그 결과 싸움에 패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거라고
어떻든 너만의 발자취를 남기고 오라'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그는 발자국을 남기고 떠납니다
나중에 유명가수가 된 세리가
생선가게 뮤지션이 목숨을 다해
동생을 구해준 것에 깊이 감사하며
그가 작곡한 노래에 가사를 붙인 'Reborn'으로 자신의 공연 피날레를 장식하는데요
눈물 어린 노래 장면과 노랫말이 뭉클합니다
'삶을 가르쳐 준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더없이 소중한 사랑의 유품에
쓸쓸함은 어울리지 않아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눈물에 젖은 밤을 끌어안아요
당신은 항상 내 곁에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마음을 떨리게 만들어요
언젠가 또다시 만날 때까지
잠시 이별이에요
이제 당신을 만질 수는 없어요
그러나 느낄 수 있어요
우리가 살았다는 이야기를 입술에 싣고서
당신을 대신해서 노래해요
목소리가 다 할 때까지'
'당신으로부터 내게로
나에게서 또 누군가에게로
마음이 이어진다'는 노랫말이
따사롭게 마음에 젖어듭니다
3개월 시한부 삶을 살게 된
나미야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아들에게
잡화점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병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니라
마지막 부탁이니 잡화점에 데려다 달라고 하죠
생의 마지막 고민을 털어놓으며
나미야 할아버지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첫사랑 연인 아키코(나루미 리코)와 함께
나미야 잡화점에서 하루를 보내며
자신이 건넨 답장 덕분에 삶이 달라졌다는 미래에서 온 감사 편지를 받게 됩니다
작고 볼품없는 잡화점이지만
자산에게는 성과도 같았다고
나미야 할아버지는 회상하면서
초등학생 시절 그가 쓴 상담 편지의 조언으로
듬직한 교사가 된 다카유키의 감사 편지와
태어나기 정말 잘했다는
그린 리버의 딸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잡화점을 나서는 나미야 할아버지의 손에는
두툼한 편지 뭉치가 들려있어요
내내 밖에서 지켜보았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아들의 말에
아무도 오지 않은 게 당연하다고
모두 미래에서 온 편지라고 말하는
나미야 할아버지의 미소가 훈훈합니다
마음 따뜻한 나미야 할아버지는
아츠야가 보낸 새하얀 백지 편지에도
이렇게 멋진 답장을 해줍니다
'이름 모를 아무개 씨
당신의 미래는 아직 백지입니다
그 어떤 미래도 그려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이 자유로우니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상담을 하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나미야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에 대한
이름 없는 아무개 아츠야의 답장도
애틋하고 먹먹한 감동을 줍니다
'제 편지 덕분에
그 사람이 선택을 잘했던 건 아닙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 건
행복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를 믿고 행복해졌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는 풍경은
당신이 선택하고 당신이 잡은 거라고'
시간을 건너뛰는 위로의 편지들이
잔잔히 흐르는 샘물 같은 감동으로 다가와
기적이란 엄청나게 크거나 무겁지 않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라고 소곤댑니다
소소한 행복이 있듯이
소소한 기적도 있으니까요
작고 따사로운 뽀시래기 기적들은
늘 우리 곁에서 사랑스럽게 반짝이는데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 머무르고 있는
소중한 기적들을 한눈 파느라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정하고 따뜻한 속삭임과도 같은
영화 속 편지의 문구들이
나미야 잡화점 작은 문 틈 사이로
마치 나를 위해 던져지는 것만 같아요
'지금 당신이 보는 풍경은
당신이 선택하고 당신이 붙잡은 거'라는
영화 말미의 대사가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