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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n 24. 2024

초록의 시간 786 인생을 닮은

감기 이야기

감기는 인생과도 같아서

그냥 스치고 지나가지 않아요

무심히 지나가지도 않아요

나만 특별히 봐주는 법도 없고

룰루랄라 쉬운 길도 없고

겪을 만큼 겪어야 비로소

나를 놓아줘요


감기는 인생과도 같아서

갑자기 코끝 간질이며 와서는

눈물 콧물 땀방울 다 쏟아낼 때까지

온몸 구석구석을 아프게 하고

마디마디 저리게 하고

열에 들뜨게 해서

머릿속을 마구 헤집으며

축 늘어지게 만들어요


감기는 인생과도 같아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어요

오르막은 어김없이 가파르고

내리막조차도 거침없이 미끄러워서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어요

약을 먹고 잠이 든 순간에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감기 중이라는 티를 내게 하죠

사랑과 감기는 감출 수 없다는

그 말 옳아요


감기는 인생과도 같아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어요

지친 마음에서 오는 감기도 있고

버거운 몸에서 오는 감기도 있고

늘어지게 쉬고 싶은

게으름에서 오는 감기도 있고

앞서가는 조급함 때문에

덥석 찾아오는 감기도 있어요


감기는 인생과도 같아서

도움의 손길과도 같은

몇 가지 약이 필요하지만

쓰담쓰담 아픔 어루만지는

고운 빛깔의 약을 먹는다고 해서

씻은 듯이 금방 낫지는 않아요


감기는 인생과도 같아서

머무를 시간이 필요하고

무르익을 시간이 있어야 해요

오란다고 선뜻 오지 않고

가란다고 쉽게 가지 않아요

멈추라 해서 냉큼 멈추지도 않고

있을 만큼 있어야 비로소 떠나요


감기는 인생과도 같아서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으나

견디고 바틸 수는 있어요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내 허락 구하지 않고 왔듯이

작별 인사 또한 남기지 않으나

후유증 하나는 남기고 가죠


감기는 인생과도 같아서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아프지만 않으면 좋겠다며

마음을 휑하니 비웠다가도

감기가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잠시 내려놓았던 욕심이

슬며시 다시 꿈틀거리기도 해요


감기 앓는 동안 쓰디쓴 입맛에

제대로 먹지 못한 그 모든 것을

차례차례 하나씩

야무지게 챙겨 먹겠다는

제법 달콤한 후유증이

사랑스러운 망고빙수를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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