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905 친절한 마음
그리고 다정한 마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열린 문이 있으면 닫힌 문도 있고
좋은 날이 있으면 궂은날도 있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이
평평한 길이 있으면 비탈진 길도 있어요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빙 돌아섰다가
바닥에 비탈이라고 적힌
친절 안내 문자를 보고는
잠시 멈추어 서서 중얼거립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심한 비탈도 아닌데
참 친절도 하다~
친절한 마음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
비탈이라고 바닥에 새겨진
주홍빛 글자가 귤빛을 닮았어요
다정한 마음을 지닌
친구님 말에 의하면
초롱 눈망울 주홍빛 귤들도
비탈진 길을 걷는답니다
기온이 오르면 새콤 단맛이
그 맛을 잃어 비탈진 길을 구르듯이
떼구루루 귤주스 공장으로 가야 한대요
싱싱 탱글 새콤 달콤
예쁜 주홍빛 전성기 지나
둥근 얼굴 쪼그라들고
맛까지 시금털털해지기 전에
비탈길 지나 귤주스 공장으로 간다는
귤들의 이야기가 비탈이라는 글자에
겹쳐 떠올라 마음 한구석에
짠한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그러나 비탈길 지나면
다시 평탄한 길이 나오니까요
중요한 건 길보다
길을 걷는 마음입니다
모양이 시들고 맛도 기우는
귤들도 비탈진 길을 지나
귤주스 공장을 거쳐
새콤하고 달콤한 주스가 되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올 테니까요
비탈진 길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마음만 있으면
미끄러지거나 구르지 않고
평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