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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913 네 인생을 살아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by eunring

하하 웃고 싶어서

유쾌하고 재미난 영화를 봅니다

그러나 재미난 게 꼭

유쾌한 건 아니죠

웃음 속 눈물이 더 아픈 법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어요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뾰족하게 되살아나

날카로운 손톱으로 기억을 헤집으며

괴롭히는 상처도 있죠

폴에게도 그런 상처가 있어요


이웃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가 건넨

마들렌 한 조각과 차를 마시고는

어린 시절로 기억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 폴의 모습이

안타깝고 애처롭습니다


먼 기억 속에서 꿈결처럼 흐르는

사랑 한 모금 꿀 한 모금

무지개를 위한 햇빛 한 줄기~

사랑스러운 자장가로 이어지는

기억의 흐름을 타고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리운 엄마를 만납니다


엄마 만났니

마담 프루스트의 물음에

어린아이처럼 고개 끄덕이는 그는

어린 날의 아픈 기억 속에 주저앉아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했어요


기억 속 푸른 바닷가에서

어린 엄마 아니타와 아기 폴은

사랑스럽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루바코코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광고쟁이 남자는 엄마에게 반하고

아빠 마르셀은 질투로 시무룩~


개구리와 함께하는 샹송 음반을 들으며

광고쟁이 아저씨 제제를 질투하는

아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기억해 내며 우는 폴을 향해

마담 프루스트는 손을 내밉니다

지난 시간의 아픔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기 위해서죠


그리운 엄마

그러나 미운 아빠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빠를 향한 분노를 끌어안은 채

마담 프루스트와 우연히 만난 그는

그녀가 건네는 차를 마시고

뜻밖의 기억 여행을 하게 됩니다


두 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말문을 닫아버린 그를 위해

함께 사는 두 이모는

현관문 옆에 작은 칠판을 걸어두고

서로의 행방을 알리는

간단 메모를 남기곤 합니다


옷도 행동도 표정도 같은 두 이모는 그를

피아니스트로 키우려 뒷바라지하지만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단조롭게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죠


그가 피아노 콩쿠르를 준비하도록

보살피는 이모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어릴 적 상처와

추억에 덜컥 발목이 잡힌 채

제자리걸음으로 머물러 있어요


스스로 실없는 사람이라는

마담 프루스트는 조경사가 되고 싶었다며

집안에 비밀스러운 정원을 만들어 놓았어요

부처님을 만나러 인도까지 다녀왔다는

그녀는 천국 따위 믿지 않는답니다

노력하면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 끄덕이게 됩니다


이쁘고 애처로운 눈빛의 폴은

두 살 아기의 상처 속에 머물러 있고

그의 곁에는 피아노뿐

폴이 개구리 노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담 푸르스트는

이모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맙니다


마담 프루스트의 고장 난

우쿨렐레를 고치는 폴에게

행복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라~는

앞 못 보는 피아노 조율사

코엘로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아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우쿨렐레처럼 망가지고

마담 프루스트가 폴에게 남긴

몇 개의 마들렌과 찻잎 한 통입니다

'네가 정원에 오지 않으니

네게 정원을 보낸다' 그리고

'네 인생을 살아'라는

메모가 덧붙어 있어요


아빠의 음반을 들으면서

차와 마들렌을 먹으며 폴은

스스로 기억 여행을'떠납니다

엄마 아니타와 아빠 아틸라의

진지하면서도 재미난 공연을 추억하며

그의 부모가 진심으로 서로 사랑했음을

알게 된 그는 비로소 웃습니다


청년피아노콩쿠르 결선 티켓을

마담 프루스트의 현관문틈에 넣어 두지만

마담 프루스트의 자리는 비어 있어요

상상 속 개구리악단과 함께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곡은 아름답고

그의 얼굴은 행복 미소로 가득합니다


우승트로피를 손에 쥔 그가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 가지만

그녀의 자리는

역시나 텅 비어 있어요


마담 프루스트의 묘 앞에

우쿨렐레를 놓고 돌아서는데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이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장면이

슬프고도 아름답습니다


사진 속 마담 프루스트가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듯~

'네 인생을 살아'


우쿨렐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 그가

처음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기에게

아빠~라고 말을 건네며

웃는 장면이 뭉클합니다


영화 내내 침묵하다가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되며

처음으로 아빠~라고 입을 그는

사랑하는 아기에게도 아기가 원하는

자신의 인생을 살게 테죠


마들렌과 차 한 잔이 필요해졌어요

모든 기억이 행복한 건 아니지만

폴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은빛 물고기처럼 반짝이는 기억들을

한 올 한 올 건져 올리고 싶습니다


기억은 물고기와 같아서

깊은 곳에 숨어 있다~고

마담 프루스트가 말했거든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마들렌 한 조각에 차 한 잔 하는 셈 치고

오늘은 나 혼자 마들렌 한 조각에

향기로운 차 한 잔 즐겨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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