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114 보리수 그늘 아래
마음을 쉬다
집 근처 살림 마트에 갔더니
보리수 열매가 나왔어요
앵두인가 했더니
앵두보다 덜 투명하고
조금 더 속 깊은 빨강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을 잡아당겨요
보리수나무는
한 포기 가지가 손을 뻗기 시작하면
작은 숲을 이룰 정도로 무성하다는데
그렇게 큰 보리수나무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어요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보리수는
노래 속 성문 앞 샘물 곁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지요
그 그늘 아래서 단꿈을 꾸었다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보리수 붉은 열매처럼 뭉클해져요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다죠
불자인 친구들에게 얻어듣기로는
보리수나무의 이름이
마음을 깨쳐준다는 의미라고 해요
보리수 붉은 열매를 씻어
투명 유리컵에 담아 두고
가만히 바라봅니다
속 깊이 가라앉은 빨강 열매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요
슈베르트의 노래를 들을 때처럼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 머물러 있던
아스라한 느낌들이 보리수 열매처럼
동글동글 떠오릅니다
새콤달콤하고 떫기도 한 열매의 맛이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닮았습니다
갸름한 루비 같은 붉은 열매 끝에
애처로이 매달린 갈색 꼬투리가
부드러운 손짓으로
아련한 추억을 불러옵니다
사랑을 사랑인 줄 모르고
어설피 사랑했던 철부지 기억들이
시고 달고 떫은맛으로 감도는 오후
보리수라는 애칭을 가진
큰언니 그늘 아래
잠시 마음을 뉘고 쉬어야겠어요
사르르 눈을 감으면
슈베르트의 보리수가 잔잔히 들려오고
살포시 단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은
너그럽고 편안한 보리수 그늘 아래서
가만 눈을 감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