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397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마음 나들이

by eunring

어릴 적 기차역 가까이 살았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는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특별히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오막살이는 면한 집이었고

시내 가까운 곳이어서

기차역은 금방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나란히 뻗은 철길의 아련함이 머물러 있다

양팔을 날개처럼 활짝 펼치고

철길 따라 걷다 보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역세권에 산다

그것도 더블 역세권

한강도 가까우니 강세권이고

숲에서도 멀지 않으니 준숲세권이다

가까운 곳에 도서관도 기다리고 있으며

게다가 스세권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리

뚜벅이인 내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지하철을 타면 시내도 가깝고

강 건너도 금방이고

동네 한 바퀴만 휘돌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도 골고루 있는데

이제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몸은 꼼짝없이 집콕

마음만 나풀나풀 저 혼자 나들이 중이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 안고

지금까지의 세상살이 경험으로는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집콕하며 조심조심

커피 한 잔의 위로도

마스크 쓰고 거리 두어가며

비대면 오더 후 테이크아웃이었는데

당분간은 그 호사도 누리기 어렵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보니

이생에 처음 만난 엉뚱한 곳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이기도 하고

한눈팔다 엄마 손 놓아버려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의 마음이기도 하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낯선 정류장에

나를 떨구고 달아나버린 버스 뒤꽁무니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 있는

막막한 심정이랄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손으로 붙잡을 수도 잠재울 수도 없는

세찬 바람이 수시로 불어오는 것이

고단한 인생이고 무심한 세상살이다

내 작은 힘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이 바람도 스치고 지나가리라 믿는다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잠시 멈추고 머무르는 지금

집콕하며 집밥과 집 커피의 시간도

욕심부리지 않으면 그 나름 행복이고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고 중얼거리며

친구에게 깨톡 문자를 보낸다

멜라니아야 잘 지내지?

나도 잘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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