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387 물랭 루주

미술 극장의 로트렉

by eunring

어릴 적 엄마가 입술연지를

루주라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

루주는 빨강이라는 뜻이었고

물랭 루주는 빨간 풍차라는 뜻으로

프랑스 파리의 극장 이름입니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댄스홀로 문을 열어

프렌치 캉캉으로 유명해지고

음악당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 영화관이 물랭 루주는

입구에 커다란 빨간 풍차가 있답니다

물랭 루주의 화가 로트렉은

빨강과 풍차의 조합과도 닮았습니다


귀족으로 태어나 불우한 삶을 살았으나

몽마르트르의 화가로 유명하고

물랭 루주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로트렉의 앙코르 전시회 소식에

설렘 안고 바람처럼 달려가고 싶었는데요

또 이렇게 발이 묶여버립니다

참 갑갑한 세상입니다


간다 간다 하고 내가 못 가니

기다리다 못해 미술관이 내게 옵니다

EBS 미술 극장의 문을 활짝 열고

물랭 루주의 화가 로트렉의 삶과 그림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에게 왔어요


로트렉은 말했답니다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고요

전시해설가님의 말씀에 의하면

낮은 자세로 소외된 계층의 아픔을 그린

로트렉의 작품에는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의

애틋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군요


인생이 아름답다는 로트렉의 말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이없이 구겨지고 망가져

새삼 귀하게 여겨지는 지난 순간들과

평범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로트렉은 은수저를 입에 문 귀족으로 태어났으나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계단에서 굴러

다리뼈가 부러진 후에는 하반신이 자라지 않아

152센티미터에서 그만 성장을 멈추고

작은 키를 평생 지팡이에 의지하며

소외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귀족 가문의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으로

미술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고흐와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8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다고 해요


예술가의 술이며 고흐가 사랑한 술

녹색 요정 압생트에 중독이 되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당하기도 하는데요

십 년 전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그린

30 여점의 드로잉으로

자신이 정상임을 입증하고

자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연필로 자유를 샀다'라고

로트렉은 말했답니다


화가로서의 재능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절실하게 드러내며 자유를 찾았지만

다시 압생트에 중독이 되어 안타깝게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데요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를 보살펴준 어머니가

그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고 합니다


로트렉은 풍경화보다는 인물화를 주로 그리면서

인물의 겉모습보다는 내면에 집중했고

남자보다는 여자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고 하죠

물랭 루주의 지정석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물랭 루주 내부의 모든 것을

눈에 들어오는 대로 그렸다고 해요


삶의 관찰자였던 그의 그림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스함이 담겨 있어서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갈색머리' 또는 '화장'이라는

로트렉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등을 드러내고 바닥에 앉은 갈색머리 여인'이라고

편지에 적었다는 그의 표현이 적절하고

그 여인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섬세하고 다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 목욕을 끝내고

화장을 하기 위해 앉아 있는

고단하고도 무심해 보이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로트렉이 느낀 건 인간에 대한

깊고 따스한 연민이 아니었을까요?


가녀리고 아름다운 그녀의 등에는

인생의 슬픔이 잔잔히 머무르고

쉼표처럼 정지한 듯 보이는 뒷모습에서는

그녀가 겪어온 순간들의 온갖 이야기들이

손 내밀며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지금 이대로 괜찮으니 잠시 쉬어도 된다고

서두를 필요 없다며 자신을 다독이는

그녀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들려오는 듯하고

그녀의 등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는

화가 로트렉의 진심이 전해집니다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로트렉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암울한 이 시간들을 견뎌봐야겠어요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독하지만

우리 인생은 여전히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고

로트렉이 연필로 자유를 얻었듯이

우리는 희망으로 자유를 얻어야 하니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위로하다 386 집밥과 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