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7일
아주 오랜만에 편지를 쓰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바빴어.
어제 공연을 하나 마쳤어.
남산예술센터에서 하는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라는 공연이야.
코로나 19 때문에 결국 대면 공연은 하지 못했고 ,
비대면 공연을 위한 영상 촬영을 하고 모든 일정이 끝났어.
나는 코러스로 참여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
내가 항상 동경하고,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들이 열심히 만든 공연이야.
9월 13일 일요일 오후 3시 스트리밍 될 예정이니 꼭 알람을 설정해두고 보길 바라.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사랑과 공동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자.
나는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능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
연극의 가능성, 배우의 가능성, 사람의 가능성, 사랑의 가능성.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온몸으로 수풀을 헤치고 닦아놓은 길을 보면서.
‘여기에 이런 길도 있구나’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야.
가능보다는 실패를 더 생각하고,
신뢰보다는 의심을 더 많이 하지.
십수 년 간 제도권 교육 아래서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한다고 배웠고,
주입식 교육으로 질문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어.
내가 학교에서 얻은 거라곤 타인에 대한 욕망과 질투.
비교와 피해의식.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눈으로 다시 나를 바라보는 끝없는 자의식.
나는 이런 것들을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나에겐 중력을 거스르는 것 만큼의 힘이 필요한 일이야.
남들을 따라갔던 욕망은 하나같이 모두 다 실패였어.
단 한 번도 성공한 적도, 행복했던 적도 없었어.
불행했고 괴로웠어.
외고 입시 준비가 그러했고,
인 서울 좌절이 그랬어.
책상 앞에 앉으면 ‘왜 공부를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욕지기처럼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데
그걸 꾹 누르면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채찍질하고 타인의 것을 욕망하며 앞만 보고 달리는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살던 내가 회사 책상에 앉아 제안서를 쓰다가
불현듯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배우가 되고 싶어 서울로 올라오게 된거야.
내가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첫째, 평생 멈추지 않고 변화하면서 살고 싶어서.
둘째, 타인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였어.
하지만 배우가 되겠다고 서울에 올라온 지 1년이 넘었는데
나는 지금 한예종 전문사라는 목표를 설정해두고 거기에만 매여있는 형국이야.
나는 왜 꼭 한예종에 입학하고 싶은 걸까.
혹시 나에게는 없지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질투와 시기심으로 욕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교와 열등감에 찌든 나 자신이 지겨워서 떠나왔는데,
나는 그때 고3 독서실 책상 앞으로 다시 회귀한 것 아닐까.
나는 평생 타인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런 내게 이번 공연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새로운 상상력을 심어줬어.
이런 연극이 가능하다.
이런 창작과정도 가능하다.
이런 공동체가 가능하다.
그럼 나도 더 멀리 봐볼까.
더 넓게 봐볼까.
내가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을
함께라는 가정으로 감히 상상해볼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욕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욕망의 방향을 바꿔보자.
타인을 욕망하지 말고,
타인의 성과를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말고,
욕망의 방향을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어제와 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바꿔보자.
그 욕망을 동력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기술을 더 익히고 싶어.
그것이 연기든, 노래든, 그림이든, 글이든
예술가에게 좋은 기술은 꼭 필요한 것이니까.
그래서 더 이상 너는 나의 거울이 아니게 되고,
깨끗한 유리창이 되어서
너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싶어.
그렇게 욕망의 방향을 바꾸고 싶어.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의 욕망을, 나의 절망을, 다 잊기로 해. 나를 믿기로 해. 아멘.”
(Amen, 이소라 4집 수록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