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0일
나는 매일 생각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무 약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야.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야.
내가 할 수 없는 일, 내 능력 밖의 일만 좇아가니까
뱁새 가랑이 찢어지듯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거지.
주제 파악 안 되는 이 거만함에 한숨만 나온다.
슈퍼맨이 되고 싶다는 네 살짜리 아이와 다를 게 뭐니.
26년째 주제 파악이 안 되고 제자리걸음이야.
진짜로 무언가 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처럼 앉아서 질문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채우는 사람들이야.
나는 시내버스에서 마이크로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네는 버스 기사님을 본 적이 있어.
다이소 앞에서 야채파는 할머니가 한동안 보이지 않자 내게 그 할머니 요즘 무슨 일 있냐며 안부를 묻던 아저씨를 알고 있어.
또, 나는 매장 안에 들어온 참새를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점장님과 일하고 있어.
죽은 길고양이의 눈을 감겨주며 울던 키가 작은 여성을 만나 적 있고,
“사정이 어려우신 분은 들어오셔서 말씀해주세요. 맛있는 한 끼 대접하겠습니다”라고 써진 돈가스 집을 지난 적이 있어.
이런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지 않을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다 핑계가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걸.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는 걸.
수시로 망가지는 세상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부지런히 다시 세우는.
고장 난 것을 다시 고치고,
무너뜨리면 다시 쌓아 올리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자기 자리에서 묵묵하게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사람들이 있는 걸.
그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게 돼.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허우적댈 때
인생을 대안(代案)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할 수 없는 것 중에서도 할 수 있는 걸 찾아내고,
어쩔 수 없는 것에서 기어이 어떤 수를 발견해.
그러니 나도 이제 정신 차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고기를 먹지 않고,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챙기고,
녹색당에 당비를 내고,
버스 탈 때 기사님과 눈 마주치며 인사하고,
뉴스 기사를 꼼꼼히 챙겨보고,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고,
나이에 상관없이 상대를 존중해야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