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샘 Nov 06. 2023

브런치가 뭔지도 모르면서

무식이 낳은 용기. 용기로 얻은 기회.


  어젯밤에도 잠을 설쳤다. 행여 늦잠 자다가 온라인 글쓰기 새벽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까 밤새 조바심을 낸 탓이다. 5시 50분 알람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 일어나야지.' 입으로만 중얼거리곤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20분쯤 더 잤나. 아이의 부스럭거림에야 겨우 눈을 뜨고 노트북을 켰다. 절인 배추처럼 몸이 천근만근이다. 머릿속 뿌연 안개를 겨우 걷어내고 뭐라고 쓰려고 보면 어느덧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낼 시간이다. 고요한 새벽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지난 가을, 이은경 선생님의 브런치 프로젝트 모집공고를 보고는 괜히 참여하고 싶었다. 글쓰기 수업이라고만 알았지 실은 브런치가 뭔지도 몰랐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1주차 줌 특강을 마치고도 '야망'이니 '작가'니 하는 말들은 내게 현실감 있게 와닿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함께 수업을 듣는 동기의 카톡이 도착했다.

  "과제 미루지 마세요. … 생각 많이 해야 하고, 시간 투자해야 해요."

  급하게 단톡방 대화를 읽어보니 벌써 과제 글쓰기를 시작하신 분들이 여럿이다. 아무리 벼락치기의 고수라 해도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대체 과제가 무엇이길래?! 핸드폰으로 급히 과제를 확인했는데… 그 순간부터였다, 브런치 글쓰기에 대한 고민에 온통 사로잡히게 된 것은.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물도 없이 삶은 달걀을 통째로 삼킨 것처럼 가슴이 갑갑했다. 간혹 괜찮겠다 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가도 금방 자신감이 사라져 버렸다. 꿈속에서도 글감을 찾고, 수업을 듣고, 글을 썼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일단 되는대로 휘리릭 써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퇴고는 계속되어야 했고, 매주 새로운 과제가 추가되었다. 그러자 하루에 한 번도 청소기를 돌리지 않는 날이 늘어났고, 빨래통은 가득 찼으며, 아이들 밥은 부실해졌다. 덤으로 외식비도 늘어났다. 더 큰 문제는 도저히 남들 앞에 내놓을 자신이 없는, ‘쓰레기’ 같은 글만 써진다는 점이었다.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글 나부랭이. 안 그래도 온라인상에 불필요한 콘텐츠가 넘쳐나는데, 굳이 한 숟가락 얹을 필요가 있나? 제 발로 나락에 빠졌다며 후회를 거듭하다가 결국 도망갈 핑계를 찾고 있었다.      


사진 출처 - pixabay


  그즈음 브런치의 라라 작가님 글에서 '최초의, 최고의, 최후의 독자는 나 자신'이라는 구절을 읽었다. 모르던 사실도 아니건만 속이 뜨끔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이 앞섰던, 숨겨왔던 본심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젖은 걸레 쥐어짜듯 사력을 다해 쓴 글에는 괴로움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나를 갈아 넣으면서는 글을 꾸준히 쓸 수 없을 터. 그렇다고 평생 가져온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 없다. 자꾸만 밖으로 향하려는 눈길을 내 안에 잡아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난관이자 도전인 셈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내 이름으로 출간한 책 한 권은 가지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 그 책이 어떤 내용이든 40대 중반 내 가치관과 생각, 삶의 면면을 담아낼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조금 멀리 욕심을 부려보자면, 그 책이 훗날 아이들이 나를 추억하고 이해하는 데 유의미한 기록이 되기를 소망한다.     


  브런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썼던 과제 글의 일부이다. 그저 글을 쓰면서 40대 중반의 방황을 견뎌내고 무사히 살아갈 힘을 얻고 싶었다. 훗날 아이들에게 내 이름 석 자 새겨진 책 한 권 남겨주고 싶은 소망으로 소소하게 시작한 일이었다. 소박한 바람을 힘겨운 과업으로 굳이 바꿔놓은 당사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글감 찾기는 과제가 아니라 놀이가 되었다. 남편은 "당신 최고의 장점이자 최대 단점은 뭐든지 금방 잊어버리는 거야."라고 나를 자주 놀리지만 이제껏 살아온 나날이 어딘가로 증발했을 리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대던 순간들도, 분에 넘치게 웃고 떠들던 날들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잃어버렸던 과거를 되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웬만한 사건 사고는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참신하고 재미있는 글감이 되어줄 거라 생각하면 조금도 싫지 않다.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글감을 하나둘 모아서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면 ‘브런치 작가’라는 호칭이 조금은 덜 부끄러워지겠지. 


  그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긴 하다. <가을동화> 속 원빈은 사랑을 돈으로 사고 싶다고 했던가. 이 순간 내게는 사랑보다 유머와 위트가 절실하다. “위트?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 제목 배경사진 출처 - pixaba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