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병태 Oct 24. 2020

[인사이트] ‘고객’은 스스로 오지 않는다

2018년 전후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한 책이라며 세간의 화제가 된 책이 있다. 임 홍택 씨의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다. 90년대생은 조직에서는 신입 사원으로, 시장에서는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소비자 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문제는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그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요지인 책이다. 90년대생은 알아듣기 힘든 줄임 말을 남발하고, 어설프고 맥락도 없는 이야기에 열광하며, 회사와 제품에는 솔직함을 요구하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든 소비자로서든 호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세대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꼰대질’을 하는 기성세대나 자신을 ‘호갱’으로 대하는 기업을 외면하는 신비한 세대이고,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어느 정도는 이해 가는 부분도 있다. [1] 절대로 이 책이 잘못 씌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90년대생이 모두 그럴까?  90년대생 아니라도 몰랐으니까 줄임말을 안 썼고, 몰랐으니까 맘에 안 드는 제품일지라도 솔직함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지 90년대생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만일 지금처럼 정보가 공개되고 비대칭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2] 90년대생 아니라도 90 년대생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든 소비자로서든 호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거에는 지금처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호구가 될 때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변에 있는 90년대생을 보면 기존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90년대생의 특성인지 아니면 그 사람 개인의 특성인지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 또한 출생연도로 보면 분명 90년 대생인데, 나이 먹은 사람들보다 더 옛날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던가? 정보화되고 디지털화되면 될수록 그런 사회의 특징으로 초개인화, 초인간화 등이 언급된다. 이런 특징은 예전보다 갈수록 더 개인화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설적으로 잘게 나뉜 개개인을 억지로 묶어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세대론(世代論)이다. 고객은 절대로 스스로 오지 않는다. 고객은 고객을 잘 이해하고 고객에게 필요한 것을 고객의 기대 이상으로 제공하는 것에 만족하고 가치를 느끼면 다가온다

 

휴리스틱(Heuristics)이라는 말이 있다. [3] 휴리스틱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그 노력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고찰이나 과정을 의미한다. 오늘날 환경은 매우 복잡하고, 빠르고 변화가 심하다 보니 기업이 어떤 사안의 의사를 결정하려면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시간 제약으로 인하여 완벽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때 필요한 것이 휴리스틱이다. 

 

휴리스틱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답을 찾는 것이다. 모든 변수와 조건을 검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휴리스틱은 포괄적이다. 두루뭉술하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접근법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세대론(世代論) 아닐까?

 

과거에는 굳이 ‘세대(世代, Generation)’라는 것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많은 출산이 일어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는데, 이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면서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6. 25 전쟁이 끝난 후 1955년에서 1964년까지 출생한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 베이비 붐 세대들은 전쟁 이후의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을 해야 했고, 어려운 환경인데도 먹고 살 가족이 많았으니, 근검절약하고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복구를 위한 경제 부흥의 주역으로 밤 낮 없이 일했고, 오늘날 우리나라가 잘살게 된 원동력이 바로 자신들의 노력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베이비붐 세대] 중앙일보 2011. 3. 9일 자

 

그런데 시간이 흘러 베이비 붐 세대들이 현역에서 은퇴하기 시작하고 뒤를 이어 386세대가 등장한다. 베이비 붐 세대들은 전쟁 복구와 경제 부흥이라는 기치 아래 인권을 돌보거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후손들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신념 하에 근검절약하여 돈을 모으고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는 등 악착같은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런 세대의 자녀들은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민주화 투쟁을 부르짖으면서 지식인으로 등장한다. 그래도 386세대까지는 부모들이 살아왔던 방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어느 정도 베이비 붐 세대와의 교류가 있었던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바지에 노래 같지 않는 노래를 하면서 흑인 머리를 한 신인류(新人類)가 등장한다. 벌써 50이 다 되어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 그리고 386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형성하는데 바로 ‘X세대’이다. [4] 이들은 중산층 가정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게 자라고 배울 만큼 배워 평범하게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좌절과 번민에 가득 차 단조로운 삶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세대들이다. 이들이 예측 불가능한 기호와 취향을 나타내다 보니 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기성세대들이 그냥 잘 모르겠다는 의미의

 ‘X세대’라고 불렀다. 이렇게 뭐라고 잘 설명할 수 없는 X세대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들의 특징을 묘사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PANTS이다. [5] PANTS는 일본의 어느 한 광고회사에서 유래된 한 용어로 Personal(개별화, 개인화, 개성화), Amusement(인생의 가치관을 즐거움에 두고 심각함을 기피함), Natural(자연에 대한 강한 욕구), Trans-border(나이나 성에 대한 구분을 거부함), Service(서비스에 있어서 하이테크와 하이 터치를 추구함)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X세대 다음으로 Y세대가 등장하는데 Y세대는 X세대보다는 조금 덜 충격적인 등장 한다. 아무래도 기성세대들이 X세대를 경험해 봤으니, 어느 정도 적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학자들에 따라 약간 구분이 다르지만, Y세대는 개략적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안정감도 있고, 지적이며, 개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 X세대와 많이 다르지 않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인터넷, SNS 모바일 기기에 매우 익숙한 세대이고, IMF 금융 위기를 보면서 X세대보다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세대라는 점이 차이가 있는 정도이다. 

 

가장 최근 세대는 ‘Z세대’인데 혹자는 ‘N세대’ 그리고 서두에 나왔던 ‘90년대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Z세대는 출생연도가 1990년대 생이고, 이들의 특성은 Y세대보다 디지털 시대에 익숙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에서 디지털 노매드(Digital Nomad)로 성장한다. [6] 이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여기저기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면서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같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대이다.  방이 회사이고, 교실이고, 놀이터일 수 있다. 도서관이 스타벅스로 변했으니 새벽같이 집에서 나가 자리를 맡아야 했던 대학 도서관 세대들이 그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법도 하다.

 

지금까지 여러 세대를 살펴봤는데 어떤가? 정말 세대 차이와 세대 구분이 의미 있다고 보는가?  세대 구분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자에 따라 또는 제법 유명한 학자가 쓴 글이나 마케터들의 편의에 따라 구분되는 세대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찌 보면 당연히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도록 주변 환경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고, 시간이 흘러온 거 아닐까? 베이비붐 세대의 탄생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고, 전쟁 복구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렇게 산 것이고, 소위 Z세대는 지금 환경에 맞춰 살아오고 있는 거 아닐까? 

 

사람은 있는 그대로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을 뿐이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오로지 변한 것은 문화와 환경과 기술이다. 환경과 문화와 기술이 변했는데 아직도 베이비붐 세대처럼 사는 것이 제대로 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만일 누군가의 자녀가 아직도 상투 틀고, 짚신 신고, 갓 쓰고 다니려고 한다면, 변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너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냐”라고 호통을 치게 될까? 변한 것은 오로지 문화와 기술과 환경이고, 그것이 적용되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시각이다. 마치 사람이 변한 것처럼 이해하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고 하는 세대론(世代論)이 어떤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으로 고객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뭔가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고객이 스스로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다수의 경우 사람이 집단을 이루는 목적은 개인의 이기심에 근거한다. 개인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집단의 힘을 이용한다. 때로는 집단에 속하여 불확실성을 회피할 수도 있다.  그냥 따라가면 불편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진심은 아니다. 그러니 고객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객을 집단으로 묶어서 볼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성향과 특질, 상황과 여건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비용의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개개인이 다른데, 초개인화라고 하는데, 빅데이터를 통해서 개인 성향을 분석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 무시하고 묶음으로 가려는 것은 너무 쉽게 가려는 편법일 뿐이다. 오리 한 마리를 겨냥하여 잡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그냥 아무 오리나 하나 맞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무작정 돌멩이 하나를 오리 떼 가운데로 던지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고객 분야에서의 인사이트는 고객이 기업 운영과 마케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즈니스의 출발은 고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객에 집중하여야 한다. 고객은 점차 개인화 개성화 되어가고 있다. 두리뭉실하게 고객을 분류하고, 그럴싸한 이름표를 붙여 ‘00세대’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고객과 고객의 목표를 찾아 그것을 달성해 주는 쪽으로 사업도 마케팅도, 전략도 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1] 임홍택, 90년대생이 온다, Whale books, 2018


[2] 정보의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은 경제 행위의 과정에서 거래당사자들이 가진 정보의 양이 서로 다른 경우를 말한다.


 [3] 휴리스틱(heuristics)은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거나, 굳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사용하는 어림짐작의 기술이다. 


[4] X 세대는 더글라스 커플런드(Douglas Coupland)의 소설 [X세대(Generation X)에서 유래한 말이다


[5] 김기란, 최기호, 『대중문화 사전: 300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 대중문화 20년』, 현실문화연구, 2009.08.31.


[6] 디지털 노매드(Digital Nomad)는 일과 주거에 있어 유목민(nomad)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도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을 뜻한다. 이전의 유목민들이 집시나 사회 주변부의 문제 있는 사람들로 간주되었던 반면에 디지털 노매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같은 디지털 장비를 활용하여 정보를 끊임없이 활용하고 생산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인간 유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가 그의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21세기는 디지털 장비를 갖고 떠도는 디지털 노매드의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전 23화 영원한 충성 고객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