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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태 Nov 13. 2023

의료기관 ESG는 실행할 수 있는가?

의료기관 ESG의 현주소와 전망

의료기관 ESG 동향


 국내를 넘어 세계적 화두인 ‘ESG’가 의료계에도 파고들고 있다. ESG는 기업활동에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 경영(Social), 지배구조 개선(Governance)을 고려해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비영리기관인 의료기관은 그동안 ESG 활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최근 의료기관의 ESG 도입 바람을 정부기관이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의료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ESG 통합 모델 개발’을 통하여 의료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 ESG경영 관련 비전, 경영, 목표, 전략 체계 등을 제시하려고 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2023년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기준에 ESG 지표 도입에 대해 묻는 국회 질문에 긍정적 입장을 표시한 바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공개한 「국·내외 의료기관의 ESG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 중 ▲강북삼성병원 ▲고려대의료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치과병원 ▲서울아산병원 ▲세종병원 ▲전남대병원 등(가나다순) 7개 병원에서 활발하게 ESG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의료원은 기업과는 차별화된 병원의 지속가능 사업을 펼치기 위해 「ESG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ESG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산업계에서 통용되는 ESG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계에 맞는 내용으로 재해석하여 분야별로 특화된 목표를 설정하여 적용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ESG 비전과 목표(자료: 삼성서울병원 ESG 보고서)


 이 밖에도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서울성모병원과 부천성모병원은 각각 ESG위원회를 조직하고 부서별 사업계획과 업무 활동에 ESG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가톨릭 종교기관으로서 그동안 국내 종합병원 중 가장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2020년 나눔국민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자체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여기에 ESG 활동이 구체화되면서, 시류에 맞춰 짜임새 있는 ESG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사회공헌 활동 표창장 및 ESG위원회 발족식


 서울아산병원은 종합병원 중에서는 처음으로 ESG 위원회를 발족했다. 저개발 국가에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아산인(人) 아시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태양광 발전시설, 탄소배출 저감 등 친환경 경영에도 힘써왔다. 윤리경영실을 운영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재단 이사회를 구성하는 등 투명 경영에도 힘쓰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아니지만, 부천 세종병원은 2021년 8월 ESG경영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지방병원 중에서는 전남대병원이 2021년 5월 ESG 도입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건강하게! 조화롭게!”라는 ESG경영 슬로건을 선포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을 볼 때 기업경영에서는 지속가능 경영이 중요함에 따라 ESG경영이 필수요건으로 자리 잡고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아직 ESG경영의 도입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코로나19 장기화로 구체적인 ESG 활동이 다소 미흡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측면도 있으나, 의료기관에 적합한 ESG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태이고 의료기관은 일반 기업과 달리 공익을 추구하는 비영리기관으로서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그렇지만 앞으로 국내 의료기관도 환경보호 및 안전한 병원 경영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ESG경영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ESG의 역사와 해외 의료기관 ESG 동향


 최근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경영계에 ESG경영이 확산하고 있다. 국제기구와 미국유럽 등에서는 ESG경영 관련 제도와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마련하여 강화하고 있다. ESG는 최근 갑자기 대두된 개념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용어로서의 ESG를 벗어나 지속가능 경영, 환경보호, 소외자들에 대한 관심 측면까지 의미를 확장한다면, ESG 개념은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ESG가 최근 급격하게 수면에 떠 오른 것은 유엔환경계획과 세계환경개발위원회가 발표한 「브룬트란트 보고서」(1987)에서 기인한다. 이 보고서에 제시된 ESG는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를 위한 가치를 기반으로 이익 창출의 지표인 재무성과를 넘어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핵심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지난 2006년 UN 책임투자원칙(PRI, Principle Responsibility Investment)에서 ESG 반영을 권고함으로써 ESG경영이 투자의 한 요소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EU가 기업의 비재무 정보공개에 관한 지침을 제정하고, 2020년 미국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가 기후공시 의무화 규정 초안을 발표하는 등 ESG경영 정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발표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투자회사인 블랙락(BlackRock)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의 투자가이드 발표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RE100 선언 및 Net-Zero 등을 통해 수출 중심의 우리나라 기업들은 ESG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치적인 성향으로 ESG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미국도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 때 탈퇴했던 기후협약에 다시 가입함으로써 ESG경영활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의료 분야에서는 ESG경영이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영국은 국가보건의료 서비스 강화와 함께 의료기관 활동을 기후변화에 중심을 두고, 2008년 기후변화법,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 2022년 건강관리법 등 ESG 법안을 제정하고 있으며, 특히 2020년 배출하는 탄소량과 제거하는 탄소량을 더해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Net-Zero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계 ESG 도입을 위해 보건부의 기후행동계획에 따라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펼치는 활동으로는 보건부의 ‘기후서약’에 미국 937개 병원이 참여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오는 2030년까지 5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분야는 Net-Zero를 위해 병원의 리노베이션신병원 설립 투자 등 여러 방법이 강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국제적인 의료기관의 ESG 동향에 따라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어떻게 ESG경영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우리나라 의료기관 ESG 현황과 특수성


 현재 우리나라는 대기업(LG, 삼성, SK 등)을 주축으로 ESG 위원회가 구성되어 전략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정세에 특화된 K-ESG를 배포하여 더 체계화된 이행을 지원하고 있으며,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K-ESG 가이드라인 기본 진단 항목


 최근 ESG의 파급력은 대기업에서부터 국내 주요 대학과 대형 병원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의료기관 인증제를 비롯해 질 평가, 상급종합병원 지정 등 여러 기준을 통하여 의료기관이 갖추어야 할 요건과 향후 운영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 부분은 ESG경영활동과 중첩된다. 또한 ESG경영의 지배구조 부문은 의료기관의 설립주체와 관리법령 및 관리주체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의 ESG 활동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그것은 병원의 공익성 때문이다. 병원은 국가 통제하에서 비영리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 체계를 적용받기 때문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회적인 가치(S)에 기여한다. 지역사회 기여 및 환자 만족도 제고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봉사 및 자선진료 등을 통하여 의료기관은 이미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SG경영을 말하지 않더라도 의료기관은 기존 대기업의 방식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비영리 추구를 통한 청렴하고 투명한 지배구조(G)는 병원의 기본적인 가치와 상응한다. 의료기관은 인간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만큼 의료법에 따라 의사 1인당 1개의 병원 개설 운영 원칙을 지키고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는 등 법적, 제도적으로 ESG경영에 충분히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의 기본 가치와 비슷한 S, G 분야와 달리, 환경(E) 분야의 ESG경영에 있어서는 한계점이 있다. 의료기관의 최우선 순위는 환자의 안전이다. 그러므로 의료기관에서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환경오염과 탄소배출 등의 문제를 차순위로 고려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의료기관에서의 환경 분야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면서 친환경적인 폐기물 관리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종이 사용량 감소나 에너지(전기, 물 등) 사용량 절감 등 부분적인 친환경 경영을 추구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환경문제인 탄소배출 감소, 일회용 폐기물 재사용 등의 적극적인 ESG 활동은 환자안전 및 생명존중 문제와 심각하게 대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처리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재처리된 의료용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다른 가치로 전환시키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는 것이 의료기관의 ESG 환경이다.


 이렇게 볼 때 국내 의료기관의 ESG경영활동은 분절적이며, 이벤트성 경향이 있고 S 활동에 치중하고 있으며, G 또는 E 부분은 일부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시행되는 것이므로 체계적인 경영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가?




잘되는 병원을 넘어 존경받는 병원이 되기 위하여


 의료기관의 특수성은 일반 기업과 다르다. 그러므로 ESG경영에 대한 접근방식도 일반 기업과 달라야 한다. 의료기관에서도 ESG경영에 대한 필요성과 기여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은 분명히 가지고 있고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ESG 활동이 도입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의료기관에 ESG경영을 적극 도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되어야 할 전제 사항이 있다.


 먼저, 일반 기업과 의료기관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그 시발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의료기관은 다음 <도표 1>에서 보는 것처럼, 일반 기업과는 그 운영상의 위치가 다르다.


<도표 1> 바람직한 기업경영을 통한 지속성장 모델


 일반 기업은 (D)의 위치만 추구해서는 지속성장할 수 없으며 ESG 영역에 속하는 (A)영역까지 동시에 추구하여 (B)영역으로 이동함으로써 지속성장을 추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은 법적, 제도적으로 (E)영역에 속해 있으며 그 가치와 활동 자체에 ESG 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시작과 적용 내용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


 둘째, 여러 가지 다른 기준들의 통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ESG 관련 경영 보고의 기준은 가장 많은 기업에서 적용하고 있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를 비롯하여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 Board),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외에도 300개 이상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기준 이외에도 의료기관에는 의료기관의 특수성에 해당하는 요인들이 많이 있다. 기존에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의료기관 인증평가 및 질 평가, 상급종합병원 선정 기준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내용들을 골고루 반영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2023년 5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국민보건 향상을 위한 의료기관 ESG 활동 모형」이 개발되었으나 일차적인 연구 수준이므로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 나가야 제대로 된 국내 의료기관 ESG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의료기관 ESG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일회용 의료기구를 다시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감염 관리나 환자 안전 부문에서 문제가 없다면 환자나 그 가족이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 막연한 거부감 또는 불쾌감 등으로 인하여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면 의료기관의 ESG경영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환경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ESG경영을 추구함으로써 생명이 위험하거나 의료의 질적 하향을 가져오게 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런 것은 막아야 한다.


 넷째, 결과적으로 국내 의료기관 ESG를 제대로 하려면 기존에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다양한 인증평가 기준에 ESG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도 의료기관에 다양한 평가가 중복적으로 실시됨에 따라 의료기관이 본연의 업무를 하지 못하고 평가에만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로 인한 의료진의 피로감이 표출되고 있으므로 평가에 반영하되 통합적인 평가를 실시함으로써 평가를 위한 평가가 아니라 종합적인 일회 평가를 실시하는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끝으로 의료기관에서도 의료기관의 특수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의료기관은 생명수호와 국민보건 향상이라는 당위적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목표를 수행하면서도 단순한 진료와 치료를 넘어 존경받아야 하는 윤리적 대상으로 거듭나야 한다.


 의료기관 ESG경영은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 지구적인 사업으로서의 ESG경영의 가치는 의료계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 가치를 앞장서서 이루고 있는 부분도 있다. 결국 우리가 함께 수용하고 지켜야 할 방향은 건강한 지구, 건강한 인간을 위한 ESG경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넘어서, 인간의 건강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견고히 하는 것이 의료계의 ESG경영이라는 믿음으로, 의료기관의 특수성을 감안한 ESG경영의 실천을 추구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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