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4. 아버지 단상(斷想)

박병태의 아버지에 대한 두 개의 詩

by 박병태

아버지 단상(斷想)

恩山 박 병태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천하장사셨다.


아버지는 항상 등 지게를 지고 다니셨다.

날마다 소 꼴을 지고 오셨고

겨울철 양지바른 날엔

담벼락 같은 솔 가루 땔감을 지고 오셨다

행여나 흐린 날엔

삭정이를 집채만큼 지고 오셨다


아버지는 잠이 없으셨다.

동이 트기 전에 기척도 없이 일어나

아침식사 맞춰 돌아오실 때는

언제나 무엇인가 지고 오셨다

오전에 나가서 점심에 오실 때도

오후에 나가서 으스름한 저녁 길에 돌아오실 때도

아버지는 언제나 뒷동산을 하나씩 지고 오셨다


아버지는 내가 커서

등 지게를 지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셨다

세상살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당신이 지셨던 등지게 보다

덜 무거운 짐을 물려줘야 한다는

일념이 확고하셨다.


오늘, 문득 30여 년 전

다시 못 올 곳으로 떠나가신 아버지께

아무 짐도 없는 홀가분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당신이 그토록 인내하며 바라셨던 것처럼

조금 작아진 등짐을 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오늘은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 보고 싶다.





아버지와 막걸리

恩山 박 병태


이맘때쯤 이면

밤 농사 수확에

두 볼이 홀쭉해지셨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농사일이

어찌 힘들지 않으셨을까마는

내색도 없이

막걸리 한 사발과 담배 한 모금으로

한숨을 돌리시던 아버지



말없이 주전자 뚜껑에

막걸리를 따라 주시던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 생각에

한 젓가락 집어주시던

신 김치 생각에

허름한 대폿집을 찾았다


함께 시킨 빈대떡이

다 식어 가도록

곁들여 내놓은 신 김치 한 접시가

다 비워지도록

아버지 생각에 취해

막걸리에 취해


나는 오늘 왕십리 대폿집에서

계시지 않는 아버지께

막걸리 한 되를 받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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