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8. 겨울이야기

박병태의 '겨울'에 대한 詩 4편

by 박병태

겨울비


恩山 박병태


<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luxury8680/130012510665>

달빛을 라인삼아

밤새 흐른 한줄기 눈물

누구의 사연일까요


짙은 어둠 속에 더 짙게 서린 구름이

손끝까지 내려앉으면

소리 없이 겨울비가 내리네요


땅이 젖으면 가슴도 젖는다는데

비 오는 대지를 향해 뾰족한 가슴을 내민 들

내 마음이 전달될까요


살얼음이 생기기 전 두꺼운 외투 하나 걸치고

빗방울마다 그대 이름 떠올리다

휘청하는 바람소리에

그대 이름도 우산도 날아가 버렸네요


벗어던진 외투와 젖어버린 신발은

아무렇게 던져버리고

빙빙 도는 난로 하나 꺼내놓고

찻물을 끓입니다


점점 커지는 빗소리

안경에 안개가 낄 때까지

찻잔 하나 들고 창가에 서서

백색의 망중한을 오랜만에 느껴봅니다




겨울비 2


恩山 박병태


<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99wha/220590359778>

타는 가슴 마른 대지는

살짝 비친 겨울비에

더 목말라한다.


환자들의 멍울진 가슴이

치유의 기다림으로

마라토너 입술처럼

갈라져 보인다


지쳐버린 세월이

겨울비 되어 내린다.


비 개인 하늘

새로운 희망을 그린다.

추운 겨울에도 견딜

동백꽃을 그린다.


내일은 환한 햇살이

동백을 비출까?



병원에 근무하며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퇴근길에 만난 겨울비… 비 갠 하늘에 그 들의 희망을 같이 기도해 본다. 동백꽃을 같이 그리기를 청해 본다.





겨울밤

恩山 박 병태

<사진출처 : 블로그 '귀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중에서>

불 언제 땠어요, 할머니?
아궁이 불 씨앗이

보릿고개 쌀독처럼 휑하니 비었어요
뒤편 신우대 바람이 사각사각 춥다네요

헛간에 땔나무도 얼마 없던데

너무 아껴 때는 거 아니세요


너무 썰렁하지 않아요, 할머니?
화롯불 꺼졌나 봐요


아궁이에 불씨가 넘친다더니

메리도 추워서 못 견디더라고요

맛있는 고구마 구워준다더니

고구마가 배배 마른걸 보니

화로를 끌어안아도 추울 것 같아요

할머니,

옛날 얘기나 해 주세요
도깨비 얘기도 좋고요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나무꾼 얘기 또 해주셔도 좋아요


할머니, 너무 추워요

할머니 다리가 너무 앙상해요

할머니 품이 재만 남은

화롯불 같아요

할머니 내일은

제가 감기약 사다 드릴게요


7살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밤마다 외할머니 집에서 잠을 잤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일제통치 시절 만주에서 돌아가시고 홀로 되신 외할머니가 외롭지 않으시도록, 춥지 않으시도록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드리라는 어머니 말씀에 따라 할머니 집에서 밤잠을 잤다. 우리 집에서 개울 하나 건너 조그만 초가집에 홀로 사시던 외할머니는 아버지께서 해다 주시는 땔감나무가 아까와 불을 거의 지피지 않고 추운 겨울을 나시곤 하셨다. 철없던 나는 그렇게 춥게 지내시는 외할머니가 이해되지 않기도 했지만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시는 외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한참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기억하며……





하얀 겨울


恩山 박병태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kdw2328/100061374970>

억새풀 서걱대는 스산한 강가에서

내 발길도 사각사각

방황하며 걸을 때


쓸쓸한 늦가을 너머로

휘몰아치는 모진 겨울바람

시퍼렇게 맑은 하늘

하얀 별빛 쏟아지는 날


오색으로 채색했던 산야는

평생 잊지 못할 꽉 찬 추억을 넘기고

드문드문 남은

앙상한 기억만을 그리게 했지


하얀 입김이 희뿌연 눈발로 바뀌면

나는 다시

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네


푸른 것이 다 없어진 겨울은

어느덧 내려앉은 내 흰머리 위로

모습을 숨기며

세월만큼 더 많이 쌓인

그리움까지 몰고


어느새 하얀 겨울이 되어

내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네




매거진의 이전글B-07.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