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3. 그땐 몰랐지

일상에서 몰랐던 소소한 것들의 행복에 대한 詩 4편

by 박병태

그땐 몰랐지

恩山 박 병태


봄비 그친 하늘이

맑게 밝아오는 아침


가볍게 얼굴을 어루만지는

여인의 손길 같은 바람

따스하게 스며드는 햇살


맺힌 빗방울 털고 막 터져 나와

한껏 기지개를 켜는 철쭉


그땐 이럴 줄 알았지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지


수줍은 듯 상기된 듯 발갛게 달아 오른뺨


끝내 감추지 못하고 긴장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달콤한 숨결


닿을 듯 다가서면

온몸으로 전해지는 풋풋한 떨림


늘 이럴 줄 알았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줄 알았지


그땐 그럴 줄 알았지

그땐 그것이 이렇게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건지 몰랐지



그림자

恩山 박병태


사진출처 :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6081043921

따뜻한 봄날

진한 햇살 같은 다독임으로

언제나 따라붙는 내 분신


사는 것이 어찌 꽃길만 있으랴

말없이 바라봐 준 너였기에

넌 바람은 아니었다


비 오는 날은 눈에 띌까

목소리 낮추고 빗소리에 숨어

보이지 않는 격려를 보내주는 너


마음 한켠 내주기 힘든 세상

사랑하는 사람도 변심하거늘

너는 참 한결같구나


바람이 끊임없이 흔들어도

햇빛 한 줌 비추면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인 우리는

둘이면서 하나인 우리는

영원한 동반자라네



새벽이슬

恩山 박병태


풀잎 위를 똑똑 두드려

가슴을 열라고 초인종을 누른다


소리 없이 맺힌 영롱한 눈동자

꽃잎과의 투명한 입맞춤

툭하고 건드리면

화들짝 놀라 이별을 고한다


내가 바라보면 너도 바라보는

마주친 눈빛

왈칵 안아주고 싶어도

흔들릴까 두려워 바라만 보는 사랑


미안해 내가 두려워해서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 아름다운 건

지금처럼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햇볕 들면 사라질 그대

하룻밤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사랑

새롭다는 것은 어쩌면

기다림 인지도 몰라


난 오늘도 너를 바라본다.

저기 멀리 먼동이 트면

내일을 기약하며 또다시 너를 본다



시루떡

恩山 박병태

담갔다 말린 보슬 쌀이

부딪치고 으깨어져

가루가 되면


고운 채로 곱게 거르고

켜켜이 고물을 깔아

둥그런 시루 안에 둥지를 튼다


빈틈없이 뜸질하여 한 눈 팔지 못하도록

뜨거운 열정으로 밑동부터 달궈주면


참지 못한 한숨이 뚜껑 위로 솟아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한 점 떼어 맛을 보고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그대에게 한 접시

아직도 뜨거운 내 심장에도 한 접시


나는

빈 시루가 될 때까지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뜨거운 기억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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